자막 제목 with Caption Creator 4

약사의 혼잣말

 

그림자 속에 살며시 숨어있든
상관없잖아

봉오리 같은 꽃도 얼마든
있잖아

비밀로 하고서 지키는 게
좋지 않을까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화려하게 피어있어

달콤씁쓸함에 빠지지 않는

그 판단이 부질없어

끙끙 앓으며
고개를 숙이고 있진 말아줘

사랑에 익숙할 턱이 없는
쓸데없이 꾸미지 않은

아름답게 꾸민 꽃병도
비료도 그 무엇도 필요없는

그 모습이 아름다워

꽃이 되어서
어서 공허하게 냉소해줘

그 표정이 짜릿짜릿해서
눈을 뗄 수가 없어

맛보아줘
너의 독을 나의 약으로

감싸줄 테니까
웃어줘

 

제5화 암약

 

졌습니다.

 

실력이 올랐군, 마섬(馬閃).

 

아닙니다.

힘만 믿고 하는 제 검술로는

임씨 님께는 아직 한참 멀었습니다.

그 힘이 대단한 거야.

역시 마 일족.

 

어떤가, 고순?

약사의 근황은?

어떻냐고 하심은?

조금은 살이 붙었느냐?

다소 돌아오고 있기는 한 듯합니다.

 

그렇군.

그나저나...

 

왜 이게 금지된 건지
알고 있는 거냐!

독이라고 했잖아!

 

설마 그런 일면이 있을 줄이야.

 

괜찮으십니까?

 

뭐가 말이지?

상당히 신경 쓰시는 듯하여.

 

아니,

아무것도 아닙니다.

 

역시 있었네!

 

아싸!

 

이쪽에도!

여기에도 있구나!

 

어디서 먹을까?

부엌?

하지만 출처를 물어보면 귀찮은데.

어이쿠, 그 전에...

 

맛있겠다!

항상 고마워, 묘묘!

다과회 때마다 간식을 나눠주시다니,

묘묘의 선배들은 엄청 다정하구나!

 

제대로 챙겨먹으렴!

좀 더 쪄야지!

사양말고.

 

그러고 보니 그거 알아?

 

궁중의 여관이

여자 싫어하는 걸로 유명한
고지식한 무관을 함락시켰대.

 

어떻게 했을 것 같아?

글쎄...

 

미약을 썼대!

 

미약...?

 

그건가?

묘묘, 무슨 일 있어?

아, 아무것도 아냐!

아마... 상관없을 거야.

아마도...

 

안녕하십니까.

 

아가씨!

오늘은 무슨 일이지?

잠깐 내밀하게 의논드릴 게 있어서.

뭐지?

 

이겁니다.

 

햇 송이버섯이잖느냐!

좋아하시는 듯하여 다행입니다.

숯이 필요하겠군.

그리고 장과 소금도 준비하지!

이러니 저러니 해서

돌팔이 의사 아저씨와는
어느 새 좋은 관계를 구축하고 있다.

 

끝내주는군!

슬슬 괜찮을 것 같습니다.

 

장을 뿌리고 소금을 약간...

 

드시죠.

 

맛있군!

이걸로 공범.

 

-맛있어!
-맛있어!

 

서, 선생님...!

 

저, 저주를...

저주를 풀 약을
만들어주시지 않겠습니까?

저주?

 

무슨 소리지?

이겁니다.

 

심하게 독기가 올랐네요.

일단은 연고이려나요.

조제해주겠니?

알겠습니다.

 

그래서, 저주라는 건?

그건 그저께 밤의 일이었습니다.

 

후궁에서 나온 쓰레기는

서쪽 소각장에서 태우고 있습니다.

그날도 변함없이
일을 하고 있었는데...

 

뭐지?

 

여자용 옷?

소맷부리가 그을렸군.

 

거기에 목간?

 

무엇인지 신경 쓰였습니다만,

그대로 불 안에 던져넣었습니다.

 

그랬더니...

 

저주인 겁니다!

그래서 손이 이렇게...!

 

그 불꽃은

이런 색깔이었나요?

 

아니면 이것...

 

이것도 가능하죠.

 

아가씨, 이건 대체?

불꽃놀이의 원리와 똑같습니다.

불에다 얹으면
색이 변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아니, 그럼 이 손은?

아마도

목간에 뭔가가 묻어 있었겠죠.

 

거기에 닿아
독이 오른 것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약을 바르고 상태를 지켜봐주세요.

 

고마워!

아가씨 약은 잘 들어.

금방 좋아질 거야!

 

훌륭하군.

역시 약사야.

 

임씨 님!

 

차를 준비해오겠습니다.

 

평안하신지, 임씨 님.

뭔가 용무가 있으신지요?

마치 용무가 없으면
말 걸지 말라고 하고 싶은 듯 하구나.

아닙니다, 당치도 않습니다.

 

잠깐만 따라오거라.

 

많이 기다리셨습니다, 임씨 니...!

 

몇 색 정도 있지?

구체적인 개수는 모릅니다.

그럼 색을 내게 하려면
어떡하면 되지?

소금이라면
물에 녹여서 할 수 있습니다.

물 이외에 기름 등에 녹는 것도
있는 모양입니다만.

전문 분야 밖이라 모릅니다.

 

그렇군.

 

용무가 끝나셨다면 실례하겠습니다.

기다려라.

 

왜 그러시는지요?

 

주전자찜을 좋아한다.
(일본에서 송이를 먹는 대표적인 방법)

 

부탁하마, 약사.

 

들켰나.

 

내일이라도 찾아다 드리겠습니다...

 

최근 들어서
팔에 화상을 입은 자를 찾아내라.

 

예.

 

색이 나게 한 목간은 아마도 암호?

일부러 그런 걸 쓰는 건
공공연히 말할 수 없는 내용이라서?

대체 어떤...?

 

쓸데없는 일인가.

기미역이 알 바는 아니지.

 

고마워요.

 

그건 그쪽에 부탁드려요.

 

다녀왔습니다.

 

어서 오렴.

 

묘묘, 마침 잘 됐어!

이거, 입어 봐 줄래?

 

나쁜 예감이...

 

뭔가요, 이게?

당연한 거 아니니?

원유회(園遊会) 의상이야.

원유회?

일년에 두 번,

궁정 정원에
천자와 높으신 분들이 모이셔서

공연이나 식사를 베풀어주셔.

천자께선 아직 결혼하지 않으셨으니,

황후가 안 계시잖니?

 

그 경우, 정일품비를
대동하기로 되어있어.

정일품비...

 

차기 황후의 최유력 후보,

상급비를 말하지.

 

정일품비,

상급비인 네 부인,

귀비(貴妃) 옥엽비,

현비(賢妃) 이화비,

덕비(德妃) 이수(里樹)비,

숙비(淑妃) 아다(阿多)비.

 

저번에 옥엽 님도 이화 님도
출산 직후라 결석하셨으니,

이번엔 네 부인이 다 모이게 됐단다.

거기서 저희는 무엇을?

그게, 특별히 아무것도
안 한단 말이지.

 

우리는 초대받은 입장이니까,

그저 황제를 수행하면 된단다.

 

가끔 관리들이 인사하러 오니까,

미소를 뿌리고 다니는 걸 잊지 말고.

 

그거... 전원 참가인가요?

당연하지!

이번엔 영려 공주님
첫 선 보이기에다가

상급비께서도 전원 모이고,
행사가 잔뜩!

이건 싸움이야!

각오 단단히 하고 덤벼야지!

 

가자!

 

안 그래도 시녀가 적으신 옥엽 님이셔.

신입이 빠질 순 없나.

그리고 식사가 있는 이상
기미역은 필요불가결.

역시 가슴팍엔
뭔가를 채워넣는 게 좋겠구나.

허리 둘레도
부피를 늘려야겠는데, 괜찮아?

맡기겠습니다.

 

화장도 힘 팍 줘서 해줄게.

 

가끔은 주근깨도 숨겨야지!

 

돌풍이 부는 옥외에서

공연을 보고, 식사를 먹고,

인사하러 오는 관리들에게
미소를 뿌린다.

 

틀림없이 철의 방광이 필요하겠군.

 

그렇다면...

 

이거면 됐네.

향기 좋구나.

 

뭐 만들고 있니?

생강과 귤로 된 사탕입니다.

사탕?

귤 껍질은 혈행을 좋게 하고,

생강은 몸을 데우는 작용이 있습니다.

 

혹시 원유회를 위해서?

네,

그리고 일단은
이것도 만들어놨습니다.

 

속옷에 주머니를 꿰매 붙여놨습니다.

안에 회로를 넣으면
(불을 담아 품고 다닐 수 있는 작은 화로)

추위를 막을 수 있을까 하여.

 

묘묘!

 

부탁이야!

다른 사람 몫도 다 만들어줘!

 

아, 네...

 

관례에 익숙해지면

별것 아닌 것도 못 떠올리게 되는구나.

 

약간만 궁리하면
어느 정도는 훨 나아지는데.

 

들어오시죠.

 

내 것도 부탁하지.

저, 저도 꼭 좀...

네.

 

만드는 법 가르쳐주세요.

부탁드립니다.

황제 직속의 바느질 담당이랑
식사 담당까지?

 

추워!

 

끝났다.

 

드디어 내일인가.

 

만약을 대비해 그것도 만들어두자.

 

팔에 화상을 입은 자의
수색입니다만...

아직 못 찾았나.

 

면목 없습니다.

원유회,

아무 일도 안 일어난다면
다행이다만.

 

아름다우셔요, 옥엽 님!

붉은색이 무척 잘 어울리셔요!

어쩜 이리 아름다우신지.

나라에서 제일 붉은색이
잘 어울린다고들 하는 것도 납득이 가네.

네, 누구보다도 아름다우셔요.

 

고마워.

너희에겐 이것을.

 

이상한 벌레가 붙지 않도록,

표시를 해놔야지.

 

묘묘.

 

알겠니, 묘묘?

너는 나의 시녀란다.

 

감사합니다.

 

저기, 잠깐...?

-화장하자!
-화장하자!

 

엄청나게 귀여워져서 오렴!

얼굴을 닦고 향유를 바를 거야.

그리고 주근깨도...!

 

묘묘?

어머!

어떻게?

묘묘, 너...

 

아아...

들켜버렸나.

 

자, 어서 가자.

 

그러면 이수비,

잠시 후 원유회에서.

네!

 

임씨 님...!

 

마지막은 귀비, 옥엽비로군.

 

옥엽비를 더 신경 많이 쓰시는 건

역시 마음에 드시는 장난감이
생겨서인가.

 

곤란한 분이시로군.

 

묘묘 덕분에 많은 도움 됐어.

도움이 되어드려 다행입니다.

 

평안하신지, 옥엽비.

어머, 평안하신지.

옥엽비께선 정말로
붉은색이 잘 어울리시는군.

화려하면서도 어딘가 신비로운 건

비취빛 눈동자를 가진
옥엽비이시기 때문이겠지요.

 

감사합니다.

 

어디, 공주님의 상태는?

 

평안하신지, 임씨 님.

 

아, 아아, 약사로군!

화장을 한 게냐?

아니요, 하지 않았습니다.

주근깨가 사라졌다만?

네, 지웠으니까요.

화장을 해서 지운 거지?

화장을 지워서 사라진 겁니다.

 

네가 하는 말은 이상하구나.

모순되어 있어.

아, 귀찮아.

적당히 네, 네 할 걸 그랬어.

 

매일, 말린 점토로
주근깨 화장을 하고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임씨 님께서 보신 게
화장을 한 얼굴입니다.

화장은 아름답게 보이기
위한 것만이 아닙니다.

 

왜 그런 짓을 하지?

 

알고 싶으십니까?

 

뒷골목에 끌려가지 않기 위해서 입니다.

 

홍등가라고는 하나

여자에 굶주린 녀석도 있습니다.

 

돈도 없고 폭력적이고

성병을 가진 자도 많지요.

 

꼬맹이에 깡마른 추녀라면

그리 노려질 일도 없으니까요.

 

끌려갔느냐?

미수였습니다.

대신에 납치범에게 유괴당했지만요.

 

화장이 지워지려던 참이었습니다.

아슬아슬하게 팔 만하겠다고
생각한 모양입니다.

그랬었군.

 

미안하구나,

관리가 두루 미치지 못해서.

딱히 아무래도 상관없습니다.

위법적인 납치인지,

합법적인 식구 줄이기인지,

사는 측은 구별이 갈 리가 없지요.

 

화나지 않는 거냐?

그야 말할 것도 없지요.

하지만 임씨 님 탓이 아닙니다.

 

미안했다.

 

왠일로 얌전하네.

 

아픕니다.

 

그런가,

주마.

 

그럼 나중에 연회장에서.

 

남자용 비녀?

왜 또 이런...?

 

좋겠다!

부러워!

나도 갖고 싶어.

드려도 되지만 어떻게 나누지?

 

정말, 바로 약속을 어기는구나.

 

나만의 시녀가 아니게 됐잖니.

 

저기, 그게 무슨 뜻...?

 

드디어구나.

 

원유회가 시작된다.

 

장식 같은 다정함이 아니라

어디 다 쓸 곳도 없을 만큼의 온기를

그런 제멋대로인 이상을 늘어놓으며
오늘도

말로는 못하고 집어삼키기만 했지요

추억은 아직 금목서

황혼빛을 풍기는 거리에서

웃고 있었겠지

가슴이 애달파서 눈물이 흐르고

그날의 당신 곁에서 빛을 찾아내고

어리광부렸었지

바람이 시끄러워서 귀를 막고 있었어

그런 나로부터 졸업해야겠지

사랑의 말에 발이 걸려 넘어지더라도

 

다음 시간,

원유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