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사의 혼잣말
그림자 속에 살며시 숨어있든
봉오리 같은 꽃도 얼마든
비밀로 하고서 지키는 게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달콤씁쓸함에 빠지지 않는
그 판단이 부질없어
끙끙 앓으며
사랑에 익숙할 턱이 없는
아름답게 꾸민 꽃병도
그 모습이 아름다워
꽃이 되어서
그 표정이 짜릿짜릿해서
맛보아줘
감싸줄 테니까
아버지!
아버지.
제7화 귀성
아버지,
잘 지낼까.
그랬지,
어제 원유회 뒤에...
무슨 소리니!
독을 드신 대신은 큰일 나셨다니까!
환자는 편하게 누워있어!
덕분에 푹 잘 수 있긴 했는데,
아무리 그래도 한낮까지라니
이제 와서 맨얼굴은 좀...
어머,
오늘 정도는 쉬어도 괜찮았는데.
그럴 수도 없습니다.
무슨 일 있으시면 분부해주십시오.
어라, 주근깨는...?
진정이 안 되는지라,
그것도 그렇구나.
그 시녀는 대체 누구냐고,
다들 따지고 들어서 힘들었으니까.
면목 없사옵니다.
괜찮아.
그것보다 아침부터
한가해보이길래
풀 뽑기...
원유회 때는
역시나 성실한 남자.
그 남자는 그 남자대로
시녀들의 마음을
응접실을 빌려도 괜찮겠사옵니까?
알았어.
홍낭.
네.
기분 탓인가
임씨 님으로부터 맡아왔습니다.
이건
옥엽 님께서 드셨을 뻔한 국이로군요?
네.
참 정성스러우셔라.
드시진 말아주세요.
안 먹습니다.
은은 부식이 심해서
지금은 이미 산화해버려서
맛있지 않습니다.
맛있...
이거, 맨손으로 들거나 하셨습니까?
아니오.
그릇은 건드리지 않고,
독인지 아닌지 내용물을
그 뒤엔 바로
천으로 감쌌습니다.
잠시 기다려주세요.
싹둑 싹둑 싹둑.
달그락 달그락 달그락.
솜과 가루와 붓이군요.
네.
이걸로 대체 무엇을?
제가 있던 약 가게에서는
장난 방지용으로
건드리면 안 되는 용기에
이건 그 응용입니다.
간단해요.
작게 뭉친 솜에 가루를 묻혀서
그릇에 묻혀나갑니다.
마지막에
나왔네요.
하얀 흔적이 있군요.
사람의 손이 닿은 자리입니다.
손가락 등이 닿으면
자국이 남아버립니다.
부식되기 쉬운 은식기라면
은식기는
즉, 지금 여기에 남아있는
닦은 뒤에 식기를 든
그런 겁니다.
손가락 자국의 크기와 위치로
어떤 식으로 들었는지 정도는
그릇을 든 건...
왜 그러시죠?
아닙니다...
그릇을 든 건
네 명입니까.
상관없잖아
있잖아
좋지 않을까
화려하게 피어있어
고개를 숙이고 있진 말아줘
쓸데없이 꾸미지 않은
비료도 그 무엇도 필요 없는
어서 공허하게 냉소해줘
눈을 뗄 수가 없어
너의 독을 나의 약으로
웃어줘
너무 잤어.
이대로여도 괜찮을는지요?
고순이 와있는데, 어쩔 거니?
풀 뽑기를 부탁해놨는데.
상당한 고관의 자리에 있었는데,
사로잡고 있을 게 틀림없어.
홍낭의 눈도 빛나고 있는 듯한.
숟가락으로 떠본 것뿐입니다.
염료를 발라놨습니다.
붓으로 여분의 가루를 털어내면...
더더욱 그렇죠.
쓰기 전에 반드시 천으로 닦습니다.
손가락 자국은
사람의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겠지요.
다 합쳐서 아마 네 명일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