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막 제목 with Caption Creator 4

휴일의 나쁜 악당 씨

 

저 멀리 있는

모성에서 콜드 슬립으로
잠들어계신 어머니,

잘 지내세요?

저는 드디어 지구에 파견되어

조직에서 어엿하게 일하고 있어요!

 

그것도, 그분의 부대에
배속되었습니다!

 

사실은 어머니를 만나러 가서

직접 보고드리고 싶을 정도지만,

지구에서 모성까진
간단히 오갈 수가 없어요.

아쉬워요.

 

조직 내에서도 탑 클래스의
강함을 자랑하는 그분의 존함을

저희는 입에 담을 수 없어요.

 

그래서 저희 수하들은
경외의 뜻을 담아

장군님이라고 부르는 겁니다.

 

야, 야, 런치 타임이야.

같이 식당 가자?

시끄럽다. 바쁘단 말이다. 꺼져라.

오케이, 아쉽네.

 

연차... 낼 걸 그랬군.

오늘 공개!!!
우에노 동물원 아기 판다

 

오늘은 당첨자밖에 못 본다면
어쩔 수 없지 하고 생각했는데,

애당초 왜 추첨이지?

보고 싶은 녀석들에겐
보여주란 말이다.

안 그래?

 

아기 판다의 안전과
건강이 최우선이다.

 

이 귀여움이라면 어쩔 수가 없지.

 

어쩌지?

끝이 안 나!

벌써 다들 돌아갔나?

하지만 하다못해 여기만...

이봐.

 

네놈, 최근 들어온 신입이군.

 

자, 자, 자자자, 장군님이시다!

 

벌써 정시 지났잖나.

얼른 돌아가라.

저기...

이이, 이건,
이것만 끝내고 갈까, 생각해서...!

네...

 

일처리가 느려서 죄송합니다...

 

이건 오늘 중으로
끝낼 필요가 있는 안건이 아니다.

 

이것도,

이것도다.

무리하게 해내려고 하지 마라.

지구는 하루 이틀 정도 만에
우리 모성의 것이 될 정도로 만만하지 않다.

 

이건 장기전이다.

자신의 심신을 돌보지 않으면
언젠간 몸을 망칠 거다.

내일은 휴일이다.

푹 쉬어라.

 

마, 마, 마, 말을 걸어주셨어!

 

하지만

푹 쉬라고 하셨지만, 어떡해야...

 

휴일, 보내는 법...

 

엉?

동물원에 갔나?

아, 네!

 

판다 관람줄은 이쪽입니다!

한 걸음 앞으로 붙어주세요!

 

귀여워!

 

장군님의 보고서에

다시 한 번 갈 가치가 있다고
쓰여있었는지라!

어떠한 장소일까 생각해서...

 

그, 그래서 이것을,

괜찮으시다면...!

인기 많은 모양입니다!

 

나쁘지 않군.

 

시, 실례하겠습니다!

 

야, 녹았는데?

괜찮아?

 

친애하는 어머니,

저는 앞으로도 장군님 밑에서

충실하게 일할 겁니다!

 

동물원 기념품...

 

이걸...

씹어서 부수란 거냐?

 

네 이놈 지구인들!

이 무슨 무도한 짓을!

너무 귀엽잖아!

유통기한이 다될 때까지
방에 장식해뒀습니다.

 

파...

 

판다 기르고 싶어.

 

일로 지칠대로 지쳐

목숨만 건져서 귀가한 이때,

혹시 판다를 길렀었다면...

 

최고 아닌가.

 

아니, 잠깐,

기른다니 주제 넘는 소릴.

인류 멸망 후, 판다의 숫자는 늘어

우리와 공존하게 되겠지.

즉, 기르는 게 아니라

친구가 되는 거 아닌가?

※매우 피폐해진 상태라
사고력이 저하되어 있습니다.

 

판다와...

친구가...

 

함께 게임.

함께 꽃구경.

 

고민을 듣는다.

너도 고생이군.

뭐냐, 그 정도까진 아니라고?

 

술자리.

 

여행.

 

이 얼마나 훌륭한가,
인류 멸망 후의 세계.

 

판다...

 

인류 섬멸의 결의를 새로이 한
평일 아침이었다.

 

연차 내고 동물원에 가고 싶어.

 

그렇게 돼서 연차는 냈다.

하지만,

중대한 의문이 생겨나버렸다.

 

판다의 꼬리 색은 무슨 색인가?

 

일반적으로는
판다의 꼬리는 하얀색, 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건 진실인가?

정말 하얀색인가?

귀나 손발은 검은데,

꼬리는 하얀 거냐?

 

이 눈으로 보기 전까지 난 믿지 않겠다.

※연간 패스포트를 샀다
이 눈으로 보기 전까지 난 믿지 않겠다.

그 꼬리를 보여봐라, 판다여!

 

15분 후

30분 후

1시간 후

2시간 후

 

요 2시간,

한 걸음도 움직이지 않고

게걸스럽게 먹기만 해대고 있군.

그렇다고 해서 오래 눌러 앉으면
다른 손님의 방해가 되잖나.

기분 탓인가,

아까부터 스태프의 시선도 느껴져.

 

그리고 사진을 너무 찍어서,

배터리도 위험해...

 

베스트 샷이다.

 

뭐, 됐어.

 

봐봐, 움직였어!

 

배터리가 다 됐었지!

 

판다 씨, 또 앉아버렸네.

그러게.

 

이해한다,

앉아있고 싶은 날도 있지.

하지만,

아주 살짝 뒤를 돌아봐주지 않겠나?

한순간이라도 좋다,

판다여.

 

3시간 후

 

-하얗군!
-꼬리, 하얗구나!

 

긴 싸움이었다고,

뒷날 보고서에 썼다.

 

조금 전 중대한 의문을 해소한 나는

교감 광장에 와있다.

 

저 개체,

무늬가 판다를 닮았군.

토끼 씨랑 놀아보시겠어요?

 

어른 분들도 환영해요.

 

안으실 때는 서지 않도록
부탁드립니다.

 

그 중엔 모르모트 씨도 있어요.

 

이 사랑스런 것들을
밟지 않고 나아가라고?

 

이 무슨 시련인가.

네 이놈, 지구인들!

 

와, 대단하다.

여기 형아분, 엄청 인기 많으시네요.

 

형아 못 움직이시니까,
다들 이리 오렴.

 

앉아서 만져보세요.

 

처음엔 등 같은 데가

만지기 쉬워... 요.

 

털결을 따라서

등의 한가운데 정도가 좋아요.

 

익숙해지면 머리나 뺨이라든가.

토끼가 좋아해요.

이 애는...

 

-하얗군!
-꼬리, 하얗구나!

 

판다의 꼬리색을 함께 확인한 소년.

너는 동물학자였나?

 

아, 아니에요.

어린애인데...

 

동물 의사 선생님이
되고 싶다고는 생각하지만요.

 

그러냐.

 

엄마는 무리라고 했지만요.

 

선생,

 

어떻게 쓰다듬으면 되는지

한 번 더 가르쳐주지 않겠나?

 

선생?

저요?

그렇다.

 

하나도 모르겠으니 가르쳐주도록,

동물 의사 선생.

 

저기 말이죠...

 

이 따스함,

적당한 무게,

그리고 무엇보다도 촉감.

 

이 만지는 감촉!

이런 힐링이 존재했었을 줄이야.

역시 지구는...!

 

얕볼 수 없어.

 

직장에 투입해서...

 

혹시?

-판다도 이렇게 부드러울까?
-판다도 이렇게...

 

판다를 늘리고 나면

 

교감할 수 있게 하자.

 

그때 저 자가 동물 의사가 된다면...

 

아니,

그래도 역시

인류는 멸망해줘야겠어.

 

분명, 지구인 섬멸에 대해

생각하고 계신 거겠지!

 

토끼 투입을 성공시키기 위한
효과적인 프레젠테이션은?

 

오늘은 휴일이다.

유성과도 같은 경쾌함으로
이 자리를 벗어나고 싶었다만,

타이밍을 놓치고 말았군.

 

악의 조직의 친절한 분!

또 만나게 됐군요!

 

오늘이야말로,
이 레인저 아카츠키 레드가 상대를!

 

오늘도 휴전, 이란 건가요?

여기엔 판다도 없고,

다른 보행자도 안 보여요.

도망칠 생각인가요?

저에겐 당신들을
쓰러트려야만 할 사명이!

뭐, 기다려봐라.

분명 오늘도 휴전이다.

절대 일은 하고 싶지 않아.

하지만 그 이상으로

지금 다툴 수 없는 이유가 있다.

이 에코백 안에는
계란팩이 2팩 들어있다.

계란?

요즘 온천 달걀에 빠져있거든.

그건...

 

온천 달걀, 맛있죠.

좀처럼 예쁘게 만드는 게 어렵더군.

연습 중이다.

힘내세요.

고맙다.

그렇게 됐다.

계란이 깨지면 곤란해.

잠깐 여기서 기다려라.

 

전혀 오질 않네.

따돌려진 건가?

 

아니,

원군을 불러오는 걸지도 몰라.

그 사람은 악의 조직의 사람.

분명 어떤 비열한 수든 써올 거야.

 

난 레드니까,

제대로 정정당당히 맞받아쳐야 해.

 

이거 써라.

 

무기?

 

이것도다.

돌려줄 필요는 없다.

그리고 아는 사람에게서
차 과자를 받았다만,

다 못 먹겠으니 가져가도록.

 

역은 저쪽으로 쭉 가서
세 번째 신호에서 왼쪽이다.

치, 친절하게도 감사합니다.

어떻게 길을 헤매고 있는 걸 알았지?

대단해!

 

하지만...!

 

저, 정말로 안 싸울 건가요?

당연하지.

 

오늘은 휴일이니 말이다.

 

휴일의 나쁜 악당 씨

 

한숨이 흰 연기가 되어 녹아든 밤.

컨비니언스 스토어는 고독한 우주선이다.

 

유리 케이스 안의 호빵에

사람은 찰나 동안 몸을 맡긴다.

 

가슴 속에 쭉 스며드는 온기.

덧없는 삶의 정경.

 

겨울의 마물들.

겨울의 마물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