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막 제목 with Caption Creator 4

약사의 혼잣말

 

그림자 속에 살며시 숨어있든
상관없잖아

봉오리 같은 꽃도 얼마든
있잖아

비밀로 하고서 지키는 게
좋지 않을까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화려하게 피어있어

달콤씁쓸함에 빠지지 않는

그 판단이 부질없어

끙끙 앓으며
고개를 숙이고 있진 말아줘

사랑에 익숙할 턱이 없는
쓸데없이 꾸미지 않은

아름답게 꾸민 꽃병도
비료도 그 무엇도 필요 없는

그 모습이 아름다워

꽃이 되어서
어서 공허하게 냉소해줘

그 표정이 짜릿짜릿해서
눈을 뗄 수가 없어

맛보아줘
너의 독이 내겐 약이라고

감싸줄 테니까
웃어줘

 

녀석은 도무지 믿을 수 없어!

제9화 자살인가 타살인가
녀석은 도무지 믿을 수 없어!

제9화 자살인가 타살인가
그렇게 돼버리면, 다른 문제가 생기잖나.

 

술이다!

술을 가져와...

어지간히 변해버렸군.

하지만 저 얼굴을 보고 있으면
술맛이 떨어져.

그건 동감이야!

 

고맙군...

 

언제까지 삐져계실 겁니까?

삐진 거 아니야.

업무 중이시란 것을
잊지 말아주십시오.

알고 있어.

 

알기는 무슨.

임씨라는 인물은
그러한 어린애 같은 대답은 하지 않아.

임씨라는 인물은
장난감에 깊이 집착하지 않아.

 

새로운 일입니다.

 

그날 배를 잡고 웃으시는 옥엽비로부터
상세한 사정을 듣는 데에 고생했어.

 

착... 각?

신원 보증의 대가란 게
인기 기녀와의 면회였다고 한다.

소녀에게 그런 연줄이 있었을 줄이야.

그리고 주인께선
어떤 상상을 했을는지.

 

젊다는 건 무섭군.

 

뭐, 하지만,

그렇게나 서둘러서 일을 끝내고,

막상 만나러 가보니...

 

모르는 남자와 귀성했다니

청천의 벽력이었음은 다르지 않았겠지.

 

조금 더 머리를 짜내면 좋을 것을.

많은 관료들은 자신의 이익으로
이어지는 법안을 통과시키려고 한다.

그런 시답잖은 법안 때문에

일이 늘어나는 건
가엾게 생각하고 있다.

 

임씨 님!

이미 시간 지났다.

나중에 해주지 않겠나?

아니, 일 때문이 아니라,

그게...

 

호연(浩然) 공께서?

임씨 님.

가자.

 

그건 큰일이구나.

 

높으신 분이 죽어버렸다는군요.

차가운 것 같긴 한데,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사람에게

동정할 수 있을 만큼
감상이 풍부하진 않다.

연령은 쉰 살이 넘어

사인이라고 하면 과음,

완전히 자업자득이다.

 

이 위인께서 일부러 우두머리 시녀를
다른 볼일로 딴데 보냈다는 건...

약사, 정말로 사인은
술이라고 생각하나?

역시 물어보는군.

 

술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과음은 독이란 걸 알고 있을 겁니다.

만성적으로 계속해서 마시면
내장을 병들게 만들고,

단번에 대량 섭취하면
죽음에 이르는 경우도 있습니다.

동료들과의 연회 자리에서
대량의 술을 들이켰다고는 들었다.

그거라면 죽겠군요.

하지만 호연 공은 술이 강하시다.

과음으로 죽었다곤 생각할 수 없어.

 

죽은 남자의 이름은 호연.

술을 항아리째로 마시는
호쾌한 무인으로

인품도 좋았다고 한다.

고순.

네.

 

연회에서 마시다 남은 술이다.

 

술!

호연 공께서 마시고 계시던 건

항아리가 엎어져서
전부 쏟아져 버렸다.

 

그럼 그 항아리에 독이 들어있었다면
알 수 없겠군요.

그 말대로다.

 

얌전하군.

말도 안 되는 부탁을 하고 있는 건
알고 있단 건가.

평소처럼 쓸데없이
반짝반짝거리고 있으면 될 것을.

 

요 최근 사이의 임씨 님은 이전보다도
훨씬 어린애처럼 보일 따름이다.

 

단맛과 짠맛이 혼재하고 있어.

원래부터 단맛이 있는 술에
소금맛을 더한 듯한...

왜 그러나?

별난 맛이로군요.

그래, 달지?

호연 공의 취향이시지.

엄청난 단것파라서

아무리 좋은 훈제고기나
암염을 마련해드려도

손을 대지 않는 분이셨어.

 

옛날엔 매운 걸 좋아하셨는데,

어느 날 갑자기
단것파가 되셨다고 하셨지.

식사도 거의 단것으로만 할 정도.

당뇨에 걸리겠군요.

추억 이야기를 현실로 되돌리지 마라.

 

아직도 마실 셈이냐?

매운 거 좋아하는 사람이
단것파가 됐다라.

 

연회의 안주로 소금은 나왔습니까?

그래, 암염과,

월병과,

말린 고기가 나온 모양이더군.

같은 걸 준비할까?

아니오, 그전에 다 마셔버릴 테니.

아니, 그런 뜻이...

호연 님께서 드시던 항아리는
입수하실 수 있겠습니까?

깨져서 파편이 되어버렸다만.

상관없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조사해주셨으면 하는 게 있습니다.

 

실례하옵니다.

 

보고서입니다.

감사합니다.

 

역시.

 

술병이다.

 

핥아도 괜찮은 거냐?

이것에 독은 없습니다.

 

소금인가?

그렇습니다.

임씨 님, 말씀하셨지요?

호연 님께선
어느 날 갑자기 단것파가 되어,

이후 단것밖에 입에 대지 않으셨다고.

그래.

하지만 술병에는
말라서 결정이 남을 정도로

다량의 소금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소금은 인체에
빼놓을 수 없는 것입니다만,

너무 먹으면 독이 됩니다.

 

즉, 사인은...

마신 술의 양과
녹은 소금의 양을 생각해보면,

이게 원인이어도 이상하진 않겠지요.

아니, 하지만,

그렇게 짠 걸 마시면
보통은 맛으로...

눈치채지 못하신 겁니다.

이걸 봐주십시오.

 

호연 님의 생활습관에 대해
쓰여져 있습니다.

 

그걸 읽어보건대 아마도 호연 님께선

소금맛만 못 알아채게 된 듯합니다.

설마...

 

호연이라는 남자는

성실하고 유능한 관료로,

금욕적인 성격이었던 모양이다.

 

그리고 꽤 오래 전에

아내와 아이를 돌림병으로 잃었다.

그 뒤로는 오직 일만.

유일한 즐거움이 술과 단것이었다.

 

미각이 없어지는 병이 있습니다.

원인은 식사의 불균형이나 스트레스.

성실한 사람일수록 마음을 억제하고,

그 부담은 병으로 바뀌어버리지요.

그럼 대체 누가
술병에 소금을 넣은 거지?

 

그걸 조사하는 건 제 일이 아닙니다.

다만,

어제 주신 술에도
소금은 들어있었습니다.

단맛의 술이 입에 맞지 않는 사람이

안주로 나온 소금을 넣은 건지,

아니면, 성실한 자를
괜히 싫어하는 자들은 많습니다.

술자리에서 약간 짓궂은 짓을 한답시고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의 술병에
장난을 친 걸지도요.

그런데 상대가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계속 마시는지라,

눈치챌 때까지 더 넣어주지, 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고순.

네.

알겠나이다.

 

비겁하단 말이지.

여기까지 계기를 줬으면

범인을 가르쳐준 거나 다름없는데.

 

난 누군가가 벌받는
직접적인 원인이 되고 싶지 않아.

 

미안했군.

도움 많이 됐다.

아닙니다.

 

흑요석 술 장식?

애도 기간을 가지고 있는 건가?

 

그렇게 훌륭한 분이셨습니까?

그래,

어릴 적에 신세졌지.

 

평범한 청년 같아.

 

이 사람도 일단은 인간이구나.

 

그렇지.

 

답례다.

호리병?

그래,

어제 것과는 다르다만.

 

술!

들키지 않게 마셔라.

네!

감사합니다!

 

감사하는 표정으로 안 보인다만?

그렇습니까?

그보다 성실하게 일해주십시오.

 

이 반응은 땡땡이치고 있는 거군.

쌓이기 전에 얼른 끝내시는 게 어떨지.

성실하게 일은 하고 있다.

어떤 식으로?

아, 그러고 보니

이런 법안이 있었지.

젊은 자가 술에 빠지는 걸 막기 위해

연령 제한을 달아야 한다고.

 

술은 스무살이 되기 전까지
금지하자, 라고.

 

임씨 님...

 

그거, 절대로 통과시키지 말아주세요!

 

글쎄, 나 하나만의 생각으론
아무것도 못하지.

이, 임씨 님!

 

선생님!

 

이쪽입니다!

 

나, 나왔다!

 

겨울철이라 다행이었네요.

익사체 치고는 깨끗한 모습입니다.

용케 똑바로 볼 수 있네...

어디서 발견됐습니까?

바깥의 해자에 떠 있었어.

차림으로 볼 때
후궁의 하녀가 틀림없겠지.

그렇군.

그래서 아저씨에게.

 

검시해야 할 의사가 이꼴이라니
정말이지 돌팔이군.

아가씨, 대신 봐주지 않겠니?

안 됩니다.

 

시체는 만지지 말라고 했는지라.

그건 의외의 얘기로군.

임씨 님!

평안하신지, 임씨 님.

 

시체 보는 건 익숙한 것 같다만?

익숙한 광경입니다.

홍등가는 한 걸음 뒷편으로 들어가면
무법지대니까요.

시체를 만질 수 없는 건 어째서지?

약을 배운 스승님께서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불길한 걸 피하기 위해서냐?

아니오.

인간도 약의 재료가 되기 때문입니다.

 

호기심을 억누르지 못하는 너이니,

한 번이라도 손을 대면
무덤도 파헤치겠지.

절대 선을 넘지 말거라.

네, 넵.

그렇군.

 

실례되는 반응이군.

선생,

제대로 봐줄 수 없겠나?

 

알겠습니다...

 

이것 참...

 

키가 커.

단단한 나무 신발.

한쪽 발엔 붕대.

손가락 끝은 빨갛고

 

물속은... 차가웠겠지.

 

소녀는 상식의 하녀로

어제까지 평범하게 일했다.

위병의 견해로는
어젯밤 벽에 올라가 해자에 몸을 던졌다,

소위 말하는 투신 자살일 거라고.

투신 자살...

어떻게 생각하지?

자살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적어도 혼자서는 무리일 거라고 봅니다.

무슨 뜻이지?

벽에 사다리는 없고,

근처에 오르기 위한 도구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후궁의 성벽은
제 키의 네 배 정도 됩니다.

도구가 없으면 무리란 건가.

대개의 경우는요.

 

엄밀히 말하자면

도구를 쓰지 않고도
오를 수는 있습니다.

이전에 있었던
유령 소동은 기억하십니까?

부용비 건 말이냐?

네.

어떻게 부용비가
외벽에 올랐는가 의문이라,

성벽을 공들여 조사해보고 다녔습니다.

거기서,
장인들이 이용한 것으로 여겨지는

돌출부를 발견했습니다.

 

하지만 대개의 여성에겐 어렵겠지요.

하물며 그 하녀처럼 전족을 한 자는.

 

전족이란 발이 작을수록
아름답다고 여겨지는 풍습이다.

모든 여성에게 행해진 건 아니지만,

후궁에서도
특유의 걸음걸이를 가끔 본다.

 

자살이 아니라면,

타살이라는 거냐?

그건 모릅니다.

다만, 산 채로 해자에 빠진 건
확실하다고 봅니다.

기어오르기 위해
몇 번이고 해자를 긁었겠지요.

시체의 손가락 끝이
붉게 피로 물들어 있었습니다.

 

자살인가, 타살인가...

 

나라면 스스로 목숨을 끊겠다고는
절대 생각 안 할 거야.

타인에게 살해당하는 것도 사절이야.

죽어버리면 약도 독도 시험할 수 없어.

 

하지만,

혹시 내가 죽는다고 한다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지?

죽을 거면 무슨 독으로 할까 하고.

 

죽을 생각이냐?

당치도 않습니다.

하지만 사람은 언제 죽을지 모릅니다.

설령 바라지 않더라도

타인의 악의가 가해짐으로써

본의 아닌 죽음에
이르는 경우도 있습니다.

호연 님처럼요.

 

그것이 언제 찾아오는지 아무도 몰라.

운명에는 거스를 수 없어.

 

그 눈에 비치는

차가운 밤의 밑바닥

 

변덕스레 떠오르는

어슴푸레한 빛을 한데 묶어

하나씩 하나씩 이어가네

아직 보지 못한 내일을 더듬어가며

 

임씨 님.

 

뭐지?

 

혹시 저를 처형하실 경우엔

독살로 해주시지 않겠습니까?

 

왜 그렇게 되나!

혹시 제가 뭔가 실수를 저질렀을 경우,

처분을 내리시는 건
임씨 님이실 테니까요.

 

바로 실수를 저질러 버렸나?

죄송합니다, 너무 기어올랐습니다.

교살이든 참수든 불평은 않겠습니다.

아니, 그러니까 왜 그렇게 되나?

 

제가 평민이라서 입니다.

사소한 실패로
간단히 날아갈 목숨입니다.

그런 짓은 하지 않는다.

한다, 하지 않는다가 아니라,

할 수 있다, 할 수 없다, 이니까요.

 

성가신 소릴 한 모양이군.

 

용무가 끝나셨다면

실례하겠습니다.

 

그 후, 풍문으로 들은 건

죽은 하녀가 원유회의
독살 소동 자리에 있었다는 얘기였다.

 

그런 걸로 보이는 유서도 발견되고

자살이란 걸로 사건은 막을 내렸다.

 

일전에 분부하신 결과가
이제야 도착했습니다.

팔에 화상을 입은 자를 찾아내라고 한 지
두 달이나 지났다.

시간이 너무 걸렸어.

면목 없습니다.

그래서, 대체 누구지?

네,

의외로 거물이었습니다.

 

석류궁, 풍명(風明).

 

숙비 아다비의 우두머리 시녀입니다.

 

그렇군.

 

물러가 있거라.

 

아두비...

 

장식 같은 다정함이 아니라

어디 다 쓸 곳도 없을 만큼의 온기를

그런 제멋대로인 이상을 늘어놓으며
오늘도

말로는 못하고 집어삼키기만 했지요

추억은 아직 금목서

황혼빛을 풍기는 거리에서

웃고 있었겠지

가슴이 애달파서 눈물이 흐르고

그날의 당신 곁에서 빛을 찾아내고

어리광부렸었지

바람이 시끄러워서 귀를 막고 있었어

그런 나로부터 졸업해야겠지

사랑의 말에 발이 걸려 넘어지더라도

 

다음 시간,

벌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