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cineaste.co.kr/ (☜☜☜ 씨네스트 → 자막자료실) 원더풀 라이프 (ワンダフルライフ, Wonderful Life, After Life, 1998) Wandâfuru raifu.avi


ワンダフルライフ

원더풀 라이프

 

야마다 할아버지 말야

 

야마다 할아버지 말야
월요일

 

처음부터 계속
섹스 얘기뿐이야

 

- 힘드시겠네요
- 그렇지

 

본인이 즐겁게 얘기하니

 

싫은 티도 못 내고 벌써 3일째야

 

그래도 결국 선택은
부인과의 온천여행?

 

그러게 말야
본인이 원하기도 했겠지만

 

생각해보니 양심에 걸렸겠지

 

- 오히려 잘됐죠 뭐
- 처음부터 그랬으면 얼마나 좋아

 

괜히 시간만 끌고...

 

- 좋은 아침!
- 좋은 아침!

 

카와시마 이거 받아

 

앗, 차거!
따뜻한 물 없어요?

 

- 안녕하세요
- 여러분 안녕하세요

 

저번 주엔 18명
모두를 무사히 보냈습니다

 

다 여러분들 노력 덕분입니다

 

그리고 이번 주엔 인원이
전부 22명입니다

 

카와시마 씨 8명

 

스기에 씨 7명

 

모치즈키 씨 7명

 

오늘 전달사항은 이상!
이번 주에도 잘해 봅시다

 

타카하시라고 합니다

 

대기실에서 기다려주세요

 

코리입니다

 

코리 요네 씨죠?

 

대기실에서 기다려주세요

 

타타라 키미코입니다

 

내 중위 월급이
95엔이었는데...

 

2,2,6 사건이 터질 때였지

 

1937년 7월 로코 다리였어

 

많이 기다리셨습니다
오전 면접을 시작하겠습니다

 

번호표 1번 타타라 키미코 씨
A 면접실로 가 주십시오

 

번호표 2번 코리 요네 씨는
B 면접실입니다

 

번호표 3번은...

 

'모치즈키 시오리'

 

네, 들어오세요

 

안녕하세요
코트는 거기에 걸어 주십시오

 

타타라 키미코 씨이시죠?

 

먼저 생년월일을
말씀해 주십시오

 

1920년 4월 3일생입니다

 

그럼 올해 연세가?

 

일흔 여덟입니다

 

이미 알고 계실 줄 압니다만

 

다시 한 번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타타라 키미코 씨

 

당신은 어제 돌아가셨습니다

 

- 명복을 빕니다
- 명복을 빕니다

 

이곳에서 일주일간
머물게 됩니다

 

개인 방을 준비해 놓았으니
편안히 지내십시오

 

단 여기 계시는 동안

 

한 가지 하실 일이 있습니다

 

살아오신 85년 동안의 인생에서

 

가장 인상에 남는

 

소중한 추억을 한 가지
골라 주셔야 합니다

 

단 주어진 시간은

 

3일 입니다

 

여러분이 골라주신 추억을

 

저희들이 영상에
담아드립니다

 

토요일이면 그 영상을
보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기억을
선명히 떠올리는 순간

 

여러분은 그 행복한
추억만을 간직한 채

 

그 곳으로 가시게 됩니다

 

어떠십니까, 야마모토 씨?

 

여기 계시는 동안
자신의 50년 인생을 돌이키면...

 

그다지 제 인생을
뒤돌아보고 싶진 않군요

 

온통 좋지 않은 기억뿐입니다

 

앞으로 더 산다고 해도

 

좋은 일이 생길 거라고
생각지 않거든요

 

- 한가지뿐인가요?
- 네, 한 가지만 부탁합니다

 

- 의자 좀 당겨도 되나요?
- 아, 네 그럼요! 긴장 푸세요

 

- 손 올려도 괜찮나요?
- 네 그럼요

 

얘기하기 편하게...

 

29년 동안 가장
인상에 남는 거요?

 

그건 말이야 남자에게는

 

그것 할 때이지...
그게 최고야

 

그거야 누구한테 물어도
마찬가지일걸

 

정말이지
좋지 않은 일이에요

 

남자와는 두 번 다시
만나지 않을 거라고

 

남자 따위 필요없다고
생각하다가도

 

남자가 따뜻하게 대해주면

 

여자니까...
남자들도 그럴 것 같은데...

 

댁은 어떻게 생각해요?

 


...

 

음...뭐라고 해야 할지...

 

즐거웠던 일
기뻤던 일...말인가요?

 

글쎄요...

 

물론 많이 있었죠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내가 바라던 대로
되지는 않았지만

 

나름대로 열정과 목숨을
다해 살아왔다고 생각하고...

 

- 모두 여기에 오나요?
- 네

 

- 모두가?
- 그럼요

 

나쁜 일 했든
좋은 일 했든

 

어렸을 때에 나쁜 일 하면
지옥에 간다고 배웠는데...

 

그렇지 않다구요?
모두 이곳으로 온다구요?

 

그래요

 

이세야 씨 21년 동안 살아오면서...

 

그 설명은 아까
들었는데요

 

별 생각 없는데...
꼭 해야 하나요?

 

공문이에요

 

수고 많네요

 

- 이번 주에는 무슨 책 읽어?
- 'R'이라는 추리 소설

 

대단하네
매주 한 권씩 읽다니...

 

- 재미있어?
- 다 읽으면 빌려줄게

 

지금 읽는 책 다 보면...

 

- 뭐 읽고 있는데?
- 세계 대 백과 사전

 

남는 건 시간뿐이거든요

 

한 명이 골칫거리야

 

'이세야'라는
21살짜리 백수인데

 

이상하게 자신감만 넘쳐서 말이야...

 

딱 싫어하는 타입이야

 

모치즈키, 넌 어때?

 

- 저는 2명
- 2명?

 

'와타나베'라는
70살 먹은 할아버지

 

'야마모토'라는
50살 먹은 남자요

 

둘씩이나!

 

- 어떤데?
- 아무 특징이 없어요

 

그게 제일 골 아프지
안 그래?

 

- '얼 그레이'라는 차야
- '얼 그레이'요?

 

- 맛이 어때?
- 괜찮은데요

 

한 잔 줄게

 

수고 많네!

 

나카무라 씨
목소리가 크네요

 

목소리가 크시다구요

 

스기에 잠깐만!

 

장기 한판 두지 않겠나?

 

수위 아저씨와 하시지 그래요

 

또 싸웠어요?

 

화요일

 

그다지 감동적인
인생이 못 돼서...

 

지극히 평범하지만
굳이 고르라고 한다면

 

어릴 때가
제일 좋았던 것 같아요

 

몇 살 때인가요?

 

확실하진 않지만
중학교 2학년쯤 됐을 겁니다

 

여름방학 전날이었는데

 

제가 변두리에 살았거든요

 

전차로 통학했었지요

 

항상 앞자리에 앉곤 했는데

 

운전석 옆의
창문이 열려있었죠

 

짧은 시간이었지만
창문을 통해 불어오는 바람에

 

몸이 날아갈 듯
정말 기분 좋았어요

 

전쟁이 끝난 후
행방불명이 된 약혼자와

 

다리 위에서
우연히 재회했다

 

예전에 거기서
결혼을 약속했는데

 

전쟁 중이라 어떻게
될 지 알 수 없었죠

 

그럼 그 다리를 건널 때
약혼자를

 

못 만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겠네요?

 

아뇨, 꼭 돌아올 거라 믿고
끝까지 기다렸죠

 

- 사람들이 많았나요?
- 많았죠

 

그래도 다른 사람은
눈에 안 들어왔어요

 

정지 화면 처럼요?

 

그랬죠...

 

그땐 한창 좋을 때였으니까

 

그녀의 가방엔
방울이 달려 있었어요

 

걸을 때마다 딸랑딸랑 거렸죠

 

방에 있을 때도

 

딸랑 거리는 소리로
그녀가 온 걸 알아채곤 했어요

 

그 방울 소리를 좋아했죠

 

겨울쯤 이었던가...

 

집에 돌아가려고 현관에서

 

신발을 신고 있었어요

 

깜깜한 밤이었죠

 

운동화라서
끈을 매고 있었는데...

 

3월 2일 전투부터

 

염분을 섭취 못해
죽을 맛이었지

 

몸에 소금기라고는
하나도 없었으니까

 

야자나무나 바나나가 있어도
올라갈 힘이 없어

 

나무를 벴지

 

그리고는 떨어진
야자를 국기에 싸서

 

등에 지고 도망 다녔는데

 

어느 날 미군들한테
포위 당한거야

 

그놈들 죄다 총을 갖고 있었지

 

이왕 총 맞고 죽을 거라면

 

담배도 피우고 싶고...

 

밥 생각도 나고 해서

 

내가 이렇게 말했지
"담배 한 개비 주게"

 

그랬더니 그놈들 중 하나가

 

담배를 꺼내주지 뭐야

 

이때가 기회다 싶어

 

배 고프다

 

밥 한 그릇 달라했더니

 

날 부축해서는

 

이, 삼백 미터 떨어진

 

오두막까지 데려가데
무슨 초소인 것 같았어

 

그리고는 테이블에
바나나 잎을 깔고

 

밥이랑 소금을 주는 거야

 

너무 기뻐서 숨도
안 쉬고 먹어치웠지

 

그러고 나니까

 

밖에 있던 닭도
먹고 싶어지더군

 

모두 배가 고파져서

 

핫케잌을 먹기로 하고

 

디즈니랜드에서 파는 건
엄청 맛있거든요

 

그런데...

 

근데 돈이 모자랐어요

 

나만 못 먹고 있으니까

 

친구가 자기 걸
하나 주지 뭐에요

 

얼마나 맛있었는지

 

그리곤 배도 부르고 해서

 

좀 멀긴 했지만
뭐였더라...

 

스플래시 마운틴
타러 가자고 했죠

 

우리 모두 함께 그걸 탔어요

 

여기 있었구나

 

- 뜨거우니까 조심해
- 고마워요

 

잘 먹겠습니다

 

맛있다

 

아까 말했던 게

 

스플래시 마운틴이라고 했나?

 

- 재밌었다고 했지?
- 응

 

내가 여기서 일한 지...

 

1년쯤...
그 정도 됐는데

 

꼭...서른 번째야

 

- 제가요?
- 응, 정확히

 

그래요?

 

모두 디즈니랜드를...
삼십 명이?

 

그래, 특히 여자
중학생들이 많아

 

그렇구나...

 

관동대지진이
일어났을 때니까

 

9살이었을 거예요

 

어린 나이었는데도
안 잊혀져요

 

우리 집이 코슈
외곽에 있었는데

 

이웃들 모두가
죽기 아니면 살기로

 

손을 꼭 잡고 있었어요

 

저도 따라서 같이 손을 잡았지요
그리곤 지진이 멈추자

 

누군가 대나무 숲에
들어가라더군요

 

그 곳에서 애들이랑
자주 놀았었죠

 

뭐 하고 노셨어요?

 

대나무 사이에 줄을 달아

 

그네를 타곤 했죠

 

그럴 때면 엄마랑 아줌마들은

 

즉석에서 주먹밥을
만들어 줬어요

 

그 맛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어요

 

기억이란 참 신기해요

 

진통이 시작되면

 

다신 겪지 않으리라 맹세하죠

 

물론 사람에 따라 다르겠죠

 

낳는 순간에 다음 아이를

 

생각한다는 친구도 있으니까

 

아마 고통을 잊지 못했다면

 

세상에 형제라는 게
없었을지도 몰라요

 

20살 때 자살하려고

 

절벽 위에서
뛰어 내리려고 하다

 

그 때 기차선로로
뛰어 내리려는데

 

창백한 푸른 달빛이

 

반사됐어요

 

마치 번개처럼

 

내 눈을 밝혔죠

 

바로 그 순간
기차가 지나갔는데

 

멍해진 머릿속에
문득 떠오른 게

 

애인 얼굴과
어머니 얼굴이었습니다

 

하나를 고르라니 그것 참...

 

그런 식으로 과거를
돌아본 적이 없어서...난감하군요

 

앨범이나 일기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자제분은 있으셨나요?

 

없었습니다

 

취미는요?

 

별로...

 

부인과 여행을 갔던 추억이라도?

 

그런 종류 것이어야만
되는 겁니까?

 

열여섯에 여잘 알게 됐지

 

열일곱부터는 셀 수조차 없어

 

- 유곽에 다니셨나요?
- 응

 

그런 곳에 가서
시간 질질 끌면

 

11시 돼서 문 닫아 버리고

 

쓸만한 계집을 놓치게 돼

 

처음에 이쁜 애가 "오빠"

 

거기 멋진 오빠, 놀다 가세요
몇 마디 하면

 

헬렐레 그냥 녹아버리지

 

근데 걔들은 비싸서

 

보통 문 닫기 전
세일을 기다리지

 

천 엔짜리 같으면
오백 엔으로...

 

억수로 재수 없는 날도 있지

 

진짜 안 생긴 계집애 걸리면...

 

생후 5개월인가 6개월이었나

 

- 5, 6개월요?
- 5월생이니까, 가을 쯤 일거에요

 

- 10월이나 11월?
- 정확한 건 아니지만

 

태어나 얼마 안 됐을 땝니다

 

- 맞아요, 가을쯤...
- 가을이라...

 

오전중이 아니라
오후였을 겁니다

 

그것도 정확하진 않지만

 

발가벗고 이불 위에
누워 있었는데

 

햇살을 듬뿍 받고 있었죠

 

따사로운 가을 햇살이었어요

 

- 몇 시쯤이었나요?
- 저녁이었어요

 

아니, 3시쯤요...

 

뭐 좋았던 기억 없나요?

 

니시무라 씨, 즐거웠던 기억...

 

결혼은 하셨었나요?

 

니시무라 할머니, 할머니...

 

결혼한 적 있으시냐구요?

 

자제분은요?

 

그럼 손주는요?

 

여긴 꽃이 안 피나?

 

봄이 되면 피지요

 

얼마나 예쁜데요

 

예쁘겠지...

 

할머니는

 

올해 연세가 어떻게 되세요?

 

보신 것 같이 니시무라 씨는

 

죽기 전에 이미 선택을 했습니다

 

저도 처음에 잘 몰랐는데

 

9살 때의 기억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9살이라...

 

그럼 그녀의 눈에는
나나 주위의 풍경이 어떻게 보일까?

 

글쎄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은 어떨까요?

 

다음!

 

- 완전 꼴통입니다
- 왜?

 

이세야는 여전히 진전이 없어요

 

못 고르는 게 아니라 안 골라요

 

선택을 안 한다고?

 

- 몇 살인데?
- 스물 한 살요

 

그 나이면 뭔가 있을 법도 한데

 

- 담당 좀 바꿔주시면 안 돼요?
- 말도 안 되는 소리!

 

진짜 적응 안돼요

 

분발하겠습니다

 

잘해 봐!

 

와타나베 이치로 씨
70살, 회사원

 

대학 졸업 후 철강 회사에서
정년퇴직했습니다

 

가족은 부인뿐인데
5년 전 타계했고

 

자기가 살아온 증거가 될만한
일을 선택하고 싶어 합니다

 

살아온 증거?

 

거창하게 나오시는군

 

그런 걸 남기는
사람이 어딨어

 

여기 와서
찾으면 늦지

 

그래서 비디오를 주문하려구요

 

분도 씨말인데요

 

이 사람이 분도인가?
드문 케이스이군

 

1살도 안 됐을 적을
뭘 기억한단 말야?

 

보통은 몇 살까지 기억하나요?

 

평균적으로 4살이라고...

 

스기에, 자넨 가장
빠른 기억이 언젠가

 

저 말입니까?

 

유치원에 입학했을 때요

 

버스 타고 다녔는데

 

정기권 넣는 지갑이 투명했어요

 

흔들리던 지갑을 보고 있으면

 

어디라도 갈 수 있을 것 같았죠

 

저도 유치원 때가 기억나요
매일 마시던 차가 있었는데

 

- 무슨 차?
- 볶은 잎차요

 

점심시간에
늘 마셨어요

 

혀로 기억하는 거죠
감각의 기억이라고 할 수 있죠

 

모치즈키는?

 

3, 4살 때...

 

눈에 대한 기억이
인상적이었어요

 

할머니 집이 시골이었는데

 

생각해보면 그때
눈 위에서 놀았던 게

 

초기 기억인 것 같아요

 

눈을 굉장히 좋아했거든요

 

눈이 차가웠나?

 

뭐랄까...정적의 세계
같다는 느낌이었어요

 

- 소리로 기억하나?
- 네, 소리로...

 

모두 3, 4살 적은
기억하는구만

 

그렇다면 그 전 기억은
어떻게 된 걸까?

 

그 전에도 여러 가지
일이 있었을 텐데

 

현대의학에서는 태아 적까지

 

기억하는 사람도 있다더군

 

자궁 안에 있을 때를요?

 

눈을 감고 물속에 몸을 담그면

 

엄마 뱃속에 있을 때처럼 편안해져

 

걱정이나 불안감이 덜해진데

 

정말이야

 

목욕중

 

이름은 와타나베 이치로

 

71개 비디오테이프
복사 부탁드려요

 

이번 주는 이 분하고
야마모토 씨 두 분만

 

언제쯤 도착합니까?

 

내일 오후요?

 

네, 알겠습니다

 

잘 부탁합니다

 

수요일

 

여러분 안녕하세요

 

수요일 아침이 밝았습니다

 

선택의 마지막 날입니다

 

오늘 오후까지 꼭 부탁드립니다

 

- 바꾼다고?
- 응

 

그래, 왜?

 

별로인 것 같아서...

 

그렇구나

 

그럼 오늘 하루 동안
잘 생각해 봐

 

꿈같은 거 선택하면 안 되나요?

 

- 꿈?
- 네

 

어떤 꿈?

 

밤에 꾸는 꿈이라든가

 

악몽일 수도 있고...
왜 많잖아요

 

- 잠잘 때 꾸는 꿈?
- 그렇죠

 

뭐랄까 저 같은 경우는...

 

큰 배가 정박해 있는
칼라풀한 해변에서

 

누군가 필사적으로
쫓아오는 꿈을 꿔요

 

열심히 도망가긴 하는데 꿈이라...

 

- 슬로모션인가?
- 아뇨

 

그런 감각을
재현 할 수는 없나요?

 

- 안 되나요?
- 정말 그걸 원해?

 

아뇨, 그다지...

 

내가 감기 걸려 있을 때
죽을 끓여 와서는

 

식기 전에 먹으라고

 

입으로 후후 불어주면서

 

말하던 여자가
기억이 나는구만

 

해 놓은 밥을
냄비에서 끓이면

 

잡탕죽 밖에 안 돼

 

처음부터 쌀을 불려서 만드는

 

그 정성이...

 

죽을 만들어 준 곳은 어딥니까?

 

북쪽이었지

 

아오모리였던가...

 

- 그 여자분 집인가요?
- 그랬었지

 

- 아파트였나요?
- 응

 

평수는요?

 

7평인가?
10평인가 그랬지

 

그 여자랑 있으면

 

동경 집에 연락하는 것도
까맣게 잊은 채

 

그냥 한 5일 푹 있고 싶어졌었지

 

감기 나으면 끝내주게 한번 해 주지

 

은혜 갚으려고

 

그렇지
오른손은 치는 척만 해

 

오른손은 치지 말라니까

 

그렇지
바로 그거야

 

그 다음엔...

 

좋아, 한 번 해 볼까?

 

아주 좋아, 완벽해!

 

와타나베 씨 생애가
녹화된 테이프입니다

 

테이프 각 한 개당 1년
모두 71개입니다

 

기억과 기록은 다르니까

 

테이프는 참고만 해 주십시오

 

도움이 되면 좋겠습니다

 

열심히 해 보겠습니다

 

- 혹 부담을 드리는 건 아닌지...
- 별 말씀을

 

저녁에 오겠습니다

 

비디오라...

 

아오야마에 지금도
있는지 모르겠지만

 

청년 회관이나
일본 청년 회관

 

그리고 히비야 음악당에서
춤을 췄었죠

 

그 중에 히비야 음악당이...

 

거기서 할 때가
가장 즐거웠어요

 

무슨 노래에 맞춰
춤 추셨어요?

 

코끼리가 갖고 싶어
"참새의 춤" 그리고...

 

킨타고 춤이랑 "빨간 구두"도요

 

그때 춤을 기억하세요?

 

잘 생각 안 나는데
"빨간 구두"는

 

빨간 구두 신은 소녀
이런 식으로요

 

외국인을 따라
파트너와 손을 잡고

 

손수건을 흔들며
"소녀는 가버렸네"

 

뭐 그런 거였죠

 

지금 생각하면
참 즐거웠어요

 

작곡가인 '모토오리'라는
분이 계셨는데

 

그 집 따님 셋 중에 둘이
빨간 드레스를 입고 다녔죠

 

근데 제 오빠가
그 옷이 맘에 들었는지

 

동경을 다 뒤져
옷을 사왔어요

 

그걸 입고 돌아오면

 

오빠는 사람들에게
자랑하고 싶어서

 

'빨간 밥 사 줄게'라고
날 꼬득였죠

 

지금 생각하면
그게 치킨라이스에요

 

카페란 데를 가면
먹을 수도 있었는데

 

여종업원이 두세 명 있고

 

약간 어두침침한 곳이었죠

 

여하튼 그런 델 데려가서는

 

저한테 빨간 구두 춤을 추라고 해요

 

그럼 치킨라이스를 먹고
싶은 마음에 춤을 췄죠

 

그 다음엔 오빠 친구가

 

아이스크림 사준다며 꼬시고...

 

그땐 그런 게 얼마나 행복했는지

 

춤출 때 복장 그대로

 

먹는 데 정신이 팔려서

 

여기저기 따라다니고...

 

웃기죠?

 

그 오빠랑은 사이가 좋았나요?

 

그럼요

 

죽을 때까지
의좋은 오누이였어요

 

오빠는 돌아가셨나요?

 

네, 3년 전에요

 

임종 때까지 제가 간호했어요

 

그 때 사귀던 남자가 있었는데

 

사실은 그 날 동경으로 돌아와

 

제국 호텔에 갔었어요

 

말하자면...

 

둘만의 성인식 같은 거였죠

 

그 날의 날씨는 어땠나요?

 

- 네...눈이 왔어요
- 눈이요...

 

- 창밖으로 눈이 보였나요?
- 네

 

그인 자기 기분대로
행동하지 않았어요

 

여자를 잘 알고...
매너가 참 좋았죠

 

그 사람 품에 안겨 있을 때면

 

마치 영화 속 주인공이 된 것 같았죠

 

정말로 부드러운 사람이었어요

 

그래서 같이 살고 싶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유부남이더라구요
얼마나 고민되던지...

 

그분과 나눈 대화를
기억하세요?

 

대화라...

 

사랑한다는 얘긴 못 들었어요

 

한 때는 파일럿이 꿈이었습니다

 

딱 한 번 훈련받을
기회가 있었는데

 

그 때 구름 사이를
비행하던 기억이

 

가장 인상 깊었어요

 

어떤 비행기였나요?

 

보통 '세스나'라고 불리는
4인용 비행기였어요

 

'세스나'에서 본
구름 모양은 어땠습니까?

 

눈부실 정도로 새하얀 색에

 

모양은...

 

축제 때 파는 솜사탕을
뜯어 놓은 듯이

 

뭉실뭉실하게 떠있는 듯 했지요

 

너무 작지도 크지도 않은

 

적당한 크기에

 

온화한 느낌의 구름이었어요

 

지금의 일본을 변화시켜야 해

 

미래는 우리가 만들어 가는 거야

 

유일한 소원이 있다면...

 

내가 살아온 증거를 남기고 싶어

 

또 시작이군 그놈의 증거!

 

죽을 날만 기다리며
샐러리맨으로 평생을 사는 건

 

생각만 해도 지옥 같아!

 

그 때 탄 비행기가 이런 건가요?

 

이건 '파이퍼'에요

 

'세스나'는 날개가
위에 달렸습니다

 

위에요?

 

이건 아래에 달렸잖아요

 

날개가 위에 있는 비행기는

 

'세스나'밖에 없어요

 

그러니까 동체가 날개 밑에 있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날개가 어디 있느냐에 따라
비행 느낌은 전혀 달라지죠

 

모델을 이걸로 하실 거면

 

형태는 아무래도 괜찮으니까요

 

날개를 위에 달아 주십시오

 

취미가 뭐에요?

 

영화를 좀...

 

저 바보!

 

저도 영화 좋아해요

 

잉그리드 버그만
존 폰테인 팬이지요

 

여수라는 영화 보셨나요?

 

레베카는요?

 

어떤 장르의 영화를 좋아하세요?

 

장...르요?

 

미국 영화나 프랑스 영화는요?

 

사무라이...영화를 좋아합니다

 

저도 아버지가 워낙
좋아하셔서 많이 봤어요

 

제가 만약 여덟 살 때나
열 살 때 추억을 선택하면

 

그 때의 기억만을
간직하게 되나요?

 

그렇습니다

 

다른 건 전부 잊을 수 있나요?

 

그렇군요

 

잊을 수 있군요

 

그렇다면...
그게 진짜 천국이네요

 

그 분은 결국 5살 때
장롱 속에

 

숨어 있던 때를
선택했습니다

 

그 어둠을 선택하고 싶다고...

 

어둠이라...그렇다면
소리만으로도 표현할 수 있겠군

 

흥미로운 걸

 

그 사람 아마 말 못할 어두운 과거를
갖고 있는 게 틀림없어요

 

어허...함부로 넘겨짚지 말게

 

이건 일이야

 

냉정하지 않으면
헛다리만 짚게 돼

 

수고하셨습니다

 

와타나베 씨는
어떡하고 있을까요?

 

내 생각엔...

 

이러고 있을 것 같아

 

혹시 방해가 됐나요?

 

아닙니다
들어오세요

 

실례하겠습니다

 

신혼 때인가봐요?

 

그런 셈이죠

 

결혼 해본 적 없어서 그런지...
부럽군요

 

집사람입니다

 

'쿄코'라는 여자였죠

 

중매로 결혼한 지
1년쯤 됐을 때입니다

 

행복...하셨나요?

 

좋았죠...

 

예...

 

평범한 부부였어요

 

- 담당을 바꿔달라고?
- 네

 

별일이군, 자네답지 않아

 

이런 일 한 번도 없지 않았나?

 

목요일

 

여기 오기 전까진

 

제 인생에 자신이 있었습니다

 

나름대로 행복했다고 생각했죠

 

하지만 이렇게 뒤돌아보니

 

뭔가 허전한 게...

 

그만그만한 학력에

 

그만그만한 직장

 

그만그만한 결혼에
그만그만한 퇴직...

 

모든 게 다 그저 그랬어요

 

어젠 좋은 결혼이었다고
하셨잖아요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없습니다

 

나에겐 과분할 정도였죠

 

이런 말 하긴 뭐하지만

 

뜨거운 열정 같은 건 없었어요

 

와타나베 씨만
그런 건 아니었잖아요

 

대부분이 그랬잖아요
특히 우리 세대는요...

 

지금 우리 세대라 하셨나요?

 

 

실은 1923년생입니다

 

22살 때 죽어서
이런 모습이지만

 

살아 있었다면
75살이었을 거예요

 

그랬군요

 

- 전사하셨나요?
- 네

 

필리핀 해전에서 부상을 입고

 

동경병원에서 죽었습니다

 

그게 언제입니까?

 

1945년 5월 28일이요

 

이걸 보니 기억이 새롭네요

 

바로 이거에요

 

현관 앞 연못이 예뻤죠

 

- 그래요?
- 네!

 

근데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성인식 날 밤에
묵었다고 하셨죠?

 

그런데요

 

지금 47살이시죠?

 

기록상엔 1967년 12월 1일부터

 

이 호텔 철거공사가
시작됐다고 하는데

 

그렇게 따지면
나이가 안 맞아요

 

적어도 4살 정도...

 

저...그게 말이죠

 

지금 남편을 만났을 때

 

서른 두 살이었는데

 

스물여덟 살이라고 하셨군요?

 

그런 셈이죠

 

어려보이고 싶어서 그만...

 

저도 실은 5살 속였습니다

 

나이뿐만이 아니에요

 

'스기에'도 사실 본명이 아닙니다

 

회사가 부도나서 빚더미에 앉자

 

그때부터 야반도주의 연속이었죠

 

무라카미, 카시와기

 

야마모토, 나이토

 

'왕'이란 중국 성도 있었어요

 

정말요?

 

'뻥'입니다

 

이제 비겼죠?

 

솔직히 말씀드리면...

 

그이는 그날 안 나왔어요

 

계속 기다렸지만...

 

장래의 꿈에 관한 얘긴데요

 

선택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는...

 

미래는 안 돼

 

- 하지만...
- 지금까지

 

있었던 일만

 

단지 기억에 불과하잖아요

 

기억이란 건 결국 내 마음에
비친 이미지일 뿐인 걸요

 

물론 실제로 일어난 일이라...

 

현실감은 있겠지만
내가 영화를 만드는 기분으로

 

미래를 설계하고
여러 가지 상황을 상상하면

 

그게 기억보다

 

더 현실감 있지 않을까요?

 

과거를 돌아보는 것보다
더 의미 있는 일인 것 같은데

 

과거를 돌아보고 그 가운데
한 순간을 택해서 살아가는 건

 

제겐 고통스러운 일이에요

 

정말 안 되나요?

 

다시 한 번 생각해 봐

 

이 체제를 다시
생각하는 게 어떨까요?

 

정말 대책없구만!

 

여기 주름이 있었고

 

이런 모양이었을 거예요

 

드레스를 좋아하셨나요?

 

드레스요?

 

유치원에 들어가기 전엔
못 입어봤어요

 

유치원 들어갈 때...

 

오빠가 핑크색 드레스를 사줬어요

 

- 너무 맘에 들었어요
- 핑크색이었다구요?

 

여기에 자수가 들어가 있고

 

가슴에도 주름이 잡혀 있었어요

 

'요시에'라는 친구랑
똑같은 옷이었는데

 

그땐 너무 좋아
펄쩍펄쩍 뛰었죠

 

그 옷 입고
춤춘 적 있으세요?

 

아마 그랬을 거예요

 

기억은 잘 안 나지만...

 

그 또래에 입으면
참 예쁜 옷이었어요

 

소매가 봉긋 부풀어 올라서...

 

여긴 봄이 되면 예쁘겠네요

 

그럼요

 

벚꽃도 피나요?

 

- 할머니 벚꽃 좋아하세요?
- 에...

 

저도 좋아해요

 

이것 좀 보세요

 

제 딸인데요, 4월에 태어나
'사쿠라코'라고 불렀죠

 

마지막으로 사진 찍어준 게
세 살 때인데

 

귀가 저를 쏙 빼닮았죠?

 

여기 온 지 3년 됐으니
여섯 살이네요

 

할머니가 키우는데
걱정이 많이 돼요

 

제 기일에만 얼굴 보러
갈 수 있어서...

 

스무 살 때까진
지켜봐야 하는데

 

앞으로 14년 남았어요

 

그때까진 아빠로서
지켜봐야겠죠

 

그래서 이곳에
남아있는 거예요

 

제가 죽을 때
겨우 세 살이었는데

 

세 살 때 여름이었어요

 

마당엔 하얀 빨래가 널려있고

 

엄마가 무릎에 눕혀
귀를 파 줬어요

 

그때 엄마 냄새와

 

볼에 닿은 무릎 감촉이

 

부드럽고 따뜻했어요

 

너무 포근했죠

 

저기요!

 

왜?

 

고마워요

 

- 디즈니랜드보단 낫지?
- 응

 

엄마 냄새라든가
무릎 감촉 같은 걸 기억하다니

 

그냥 어렴풋해요

 

언니는 기억 안 나요?

 

기억나지!

 

아빠 등에 업혔을 때

 

넓고 단단하던 느낌...

 

땀 냄새...

 

머리에 바른 포마드 냄새도...

 

실례했습니다

 

어디 가?

 

로케 장소 물색하러요

 

이 봐, 시오리!

 

대나무 숲 찍으러 가서
이런 걸 찍어 오면 어떡해?

 

- 예뻐서요
- 예쁘면 뭐해?

 

재현하는데 전혀
도움이 안 되잖아

 

제대로 좀 못해?
내일이잖아

 

- 대나무 숲은 어땠어?
- 그냥 평범한 게...

 

좀 더 구체적으로
얘기해 봐!

 

대나무가 밑에서 위로...

 

그럼 대나무가
위에서 밑으로 나냐?

 

그래서 평범하다고 그랬잖아요

 

정말 구제불능이군!
좀 고분고분해지면 안 되니?

 

도대체 가정교육을
어떻게 받은 거야?

 

'사쿠라코'하고 똑같이 받았죠

 

아빠를 모르고
자라면 이렇게 돼요

 

왜 날 걸고넘어지는 거야?

 

정말 맥 빠지네요

 

카와시마 신경 쓰지 마
열여덟 살 먹은 애가 다 저런 건 아냐

 

그렇지 않아도...
여기 일 적성에 안 맞아 죽겠는데

 

그나저나...

 

가끔 그런 생각이 들어요

 

우린 뭣 때문에
이런 일을 하는 것인지...

 

죽은 사람 기억을 재현하는 게
무슨 필요가 있는 거지?

 

솜사탕을 뜯어
놓은 것 같은 모양의

 

구름이라고 하던데요

 

날개를 스치며 지나가는
구름의 풍경과

 

조종석에서 바라다 보이는
풍경이 인상적이어서

 

가능한 한 그걸
살리고 싶은데...

 

지금 준비 가능한 건
이 타입인데요

 

옆에서는 날개 밖에
안 보이는데

 

날개는 떼고 붙일 수 있어요

 

우선 날개를 뗀 후
안에서 찍어보죠!

 

그럼 위에 있는 것처럼 보이겠네요

 

날개를 붙이면요

 

여름 날 후덥지근한 기내와

 

창 밖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재현해야 하는데

 

선풍기를 이용하면 어떨까요?

 

불어오는 바람의 분위기는

 

옛날 공원에서 썼던 걸로 하면
느낌이 살 것 같아

 

온도는 영상으로
표현하기 힘드니까

 

배우들 이마에
스프레이를 뿌려서

 

땀을 흘리는 것처럼
보여주죠

 

색깔은 빨강 색만 쓰고
배경을 모노톤으로 하면

 

빨강 색이 더 두드러지겠지

 

구두와 원피스는
꼭 빨간 색이어야 해

 

치킨라이스도 빠지면 안 돼요

 

오빠와 이어주는
가장 중요한 거니까

 

- 선배, 뭐해요?
- 응? 달이 너무 예뻐서...

 

예쁜 달이라고...
갑자기 로맨티스트라도 되셨나?

 

평상시와 하나도
다른 게 없구만 뭐

 

- 근데
- 왜?

 

- '쿄코'가 누구에요?
- 누구냐니?

 

- 시치미 떼지 마세요
- 숨기는 거 없어

 

옛날에 알던 사람?
애인?

 

그런 거 아냐

 

말하기 싫으면
안 해도 돼요

 

나랑 상관없으니까

 

잘 자요!

 

시오리!
내일 카와시마 씨한테 사과해

 

- 나카무라 씨 웬일이세요?
- 잠깐 들어가도 될까?

 

네, 하지만 잘 거니까
빨리 얘기하세요

 

그러지

 

오늘밤은 달이 참 근사하구만

 

보면 볼수록 끌려...

 

항상 똑같은 모습인 것 같은데
빛을 받는 각도에 따라 다르게 보이니

 

제 방에 달 타령하러 오셨어요?

 

내가 노망난 줄 알겠군...

 

금요일

 

전기 사용량이
허용량을 초과했습니다

 

드라이기 사용은
잠시 줄여...

 

- 잘 부탁드립니다
- 네, 준비 다 됐어요

 

요시모토는 여기 있어

 

생각한 그대로에요

 

침대의 느낌은 괜찮습니까?

 

네, 이런 쟁반 같은 모양이었어요

 

할아버지는 선택했어요?

 

아직...

 

아, 할아버지가 와타나베 씨구나

 

전 '이세야'라고 해요
우리 둘만 아직 선택 못했다던데요

 

자네는...왜 선택을 못했나?

 

전요...

 

선택을 못 한 게 아니라

 

안한 거죠

 

선택하지 않는다

 

제 인생의 책임방식이에요

 

오늘 촬영날이라고

 

모두 머리에 신경쓰느라

 

잔뜩 멋부리고...

 

결국 퓨즈가 나갔잖아요

 

좋은 모습이긴 한데

 

너무 잘 보이려고
애쓰는 걸 보면

 

뭐랄까...

 

늙어가면서
자신감이 사라지니까

 

그걸 감추려고
버둥대는 것 같아요

 

거짓으로 자신을 치장하니

 

그런 점을
젊은 사람들이 비웃는 거죠

 

그래?

 

- 내가 그런 말도 했었나?
- 말했잖아요

 

땀 닦으면서
영화 좋아한댔잖아요

 

내가 언제?

 

- 말했어요!
- 말했었지요

 

내가 말했었나?

 

좋아!

 

한 달에 한 번씩
영화 보러 갑시다

 

그러죠 뭐...

 

- 무슨 대답이 그래?
- 뭐가요?

 

반응이 시큰둥하잖아
모처럼 얘기하는데...

 

알았어요
여보 그렇게 해요

 

시간은 많으니까...

 

- 정말 한가로운 오후였죠
- 선택 잘 하셨어요

 

긴자 영화관 옆
중앙공원이었는데

 

같이 영화를 본 게...

 

결혼한 지 40년 만에 처음이었죠

 

결국 마지막이 되고 말았죠
같이 영화 보러 간 것은...

 

그러셨군요

 

늦어져서 미안합니다

 

이것저것 신경만 쓰이게 하고

 

별 말씀을...

 

사실 여기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은

 

끝까지 추억을
선택 못한 사람들입니다

 

그렇게 말씀하시면
제가 더 죄송하죠

 

그럼 모치즈키 씨도?

 

- 네, 저도...
- 그랬군요

 

그러니 뭐라 할
처지도 못 됩니다

 

그랬군요

 

그럼 돌아가신 후로
쭉 여기 계셨나요?

 

아뇨, 여긴 3년 전에 왔구요

 

그 전엔 다른 데서
같은 일을 했습니다

 

아, 그랬군요
아, 네, 근데 혹...

 

선택 못 하신 겁니까?
안 하신 겁니까?

 

왜 이런 질문을 드리냐면...

 

선택하지 않는 책임방식도
있지 않을까 싶어서요

 

책임...요?

 

- 날갠 어떻게?
- 위에 달 건데요

 

구름 부탁합니다

 

구름 느낌은 어떤가요?

 

- '인 클라우드'같네요
- '인 클라우드'요?

 

진짜 구름 속에
있는 듯 한 느낌말입니다

 

시야가 훤히 트인 상태에서

 

구름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처럼

 

그러니까...
창공을 비행하다

 

구름의 숲을 만난 것 같은...

 

차창 밖으로
스치는 나무처럼

 

떠있는 구름이
스쳐 지나가구요?

 

바로 그거에요

 

여름이니까...
창문 좀 열어줘

 

바람이 불면서
옆으론 나무 숲이...

 

이쪽이 더 밝은 것 맞죠?

 

낮에는 불 안 켜니까
좀 어두웠어요

 

바람은 이쪽에서
불어올 거구요

 

- 전철 소리는?
- 녹음해 왔어요

 

바로 이 소리에요

 

- 똑 같아요
- 완벽하답니다

 

카와시마 씨! 미안한데...

 

운전수는 여기에 앉고

 

뒤에서 운전하시는 걸 바라봤죠

 

- 거긴 야단맞아요
- 카네코 씨의 눈은

 

이쪽을 향해있으니
여기가 보였겠네요

 

이쪽도 보긴 했는데

 

이쪽이 더 낫네요

 

옆에도 좀 뿌려요

 

이 정도면 되나?

 

바람 한 번
보내보죠

 

모자 써 볼래요?

 

모자 쓰셨나요?

 

기억은 잘 안 나는데...

 

모자 쓰는 게 나을 것 같은데요

 

바람에 날려가지 않을까요?

 

그럴 수도 있겠군요

 

그럼 벗죠 뭐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손에 들면 어떨까?

 

여기에 걸려 있었어요

 

그거에요
몇 명이 놀고 있었어요

 

너무 크지 않나?

 

- 옛날엔 더 컸어
- 훨씬 컸지

 

진짜 크게
만들어 봅시다

 

시오리, 여기 와서 만들어봐

 

할머니 거 보면서
따라해 봐

 

요새 애들은 하이킹
같은 것도 하지만

 

우리 시대엔
그런 게 없었어

 

부모님이랑 대나무 숲에서
주먹밥 먹는 게 좋았지

 

모기나 벌레는
많지 않았나요?

 

9월이었으니
많이 없었을 거야

 

밤새 놀 때는
모기장을 쳤지만

 

- 모기장요?
- 응...

 

관동대지진이 일어난
9월 1일 밤

 

조선인들이 불 질렀다고
난리가 났었지

 

누구는 우물에 독을
넣었다고도 하고...

 

그래서 무서웠어

 

도망가는 조선인들을 보고도

 

사람들은 쳐들어
오는 거라 생각했지

 

흉흉한 소문이
나돌았던 거군요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소리였지

 

구름은 어떻게
할 건가요?

 

솜을 날릴 겁니까?

 

해 봐야 알겠는데요

 

다음은 5번, 6번 갑니다

 

이 위치에서 카메라를
이렇게 봐 주시겠어요?

 

- 준비 됐습니다!
- 오케

 

자...레디 고!

 

정말...

 

하늘을 나는 것 같습니다

 

저 앞의 거리도
굉장히 실감나구요

 

그 시절 느낌 그대로에요

 

오빠 역을 맡은
카와시마입니다

 

잘 부탁드려요

 

이렇게 늙은 동생은
처음이시죠?

 

타타라 씨 역입니다

 

빨간 구두무용을
가르쳐 주셔야죠?

 

나도 잘 생각 안 나는데...
해 볼래?

 

지금 한 번 해 보죠

 

빨간 구두 신은 소녀를

 

파란 눈 아저씨가
데려가 버렸다네

 

이렇게 팔짱을 끼고
한 바퀴 돌고 나서

 

이쪽 손으로
손수건을 흔들어요

 

그게 끝이군요

 

손수건을 들고
이렇게 흔드는 거야

 

같이 해 볼래?

 

어쩜...귀엽기도 해라

 

빨간 구두 신은
가만있자...

 

손수건을 어떻게
들고 있었더라?

 

처음부터 들고
있진 않았는데

 

빨간 구두 신은 소녀를

 

파란 눈 아저씨가
데려가 버렸다네

 

이 손수건을 내가...
어떻게 하지?

 

그냥 손에 들고 있지 뭐
"빨간 구두"부르면 되지

 

이쁘게 생겼네요
꼭 미국인형처럼

 

빨간 구두 신은 소녀를

 

파란 눈 아저씨가
데려가 버렸다네

 

오빠가 기뻐할 거예요

 

사진 보면서
오늘 얘기해 줬거든요

 

오늘 이런 촬영이 있다구요

 

나한테 이런 시절이 있었다니...

 

낙엽을 좀 더 깔까요?

 

키타오카, 거기도...

 

그렇지 칼라풀하게
그래, 거기도 좋아!

 

토요일

 

일주일동안
수고 많았습니다

 

여러분들과도 마지막 날이군요

 

곧 시사실로 이동해

 

저희들이 재현한 여러분의
추억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보면서 그 순간이
생생하게 느껴지면

 

여러분은 그곳으로
가시게 됩니다

 

그 행복한 기억만을 가지고

 

영원한 시간 속으로
떠나게 됩니다

 

이 편지를 읽을 때쯤이면

 

당신은 제 기억에서
사라져 있겠군요

 

시간이 많지 않아
간략하게 씁니다

 

당신은 제 처
쿄코의 약혼자였죠

 

당신의 이름과 기일 날짜를 듣고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아내에게 약혼자가 있었고
그 분이 전사했다는 사실은

 

처음 만난 날
본인에게 들었습니다

 

그리고 아내는
결혼 후에도 매년

 

당신 기일이면
혼자 성묘를 갔지요

 

당신이 아내 얘길
안 하신 건

 

저에 대한 배려라고 생각하며
감사하고 있습니다

 

아내의 마음속에
남아있는 당신을

 

질투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죠

 

하지만 그걸 뛰어
넘을 수 있을 만큼의

 

세월을 저희 부부는
함께 보냈습니다

 

여기 와서야
겨우 깨달았지요

 

그래서 아내와의
추억을 선택했습니다

 

제 70년 인생도
인정하게 됐구요

 

그 말씀을 꼭 드리고 싶었습니다

 

내가 말 안 한 건
배려해서 그랬던 게 아냐

 

상처를 주기 싫어서도
아니었어

 

상처받을 내 자신이
두려웠을 뿐이야

 

쿄코가 그에게
모든 걸 고백하고

 

그가 그런 쿄코를
받아들인 것처럼

 

난 깊은 인간관계를
가진 적이 없어

 

왜 그렇게 밖에
생각 못해요?

 

선배가 모르는 곳에서

 

쿄코 씨는 선배를 깊이
생각했을지도 모르잖아

 

여기 있네

 

'와타나베 쿄코'
나카무라 씨가 담당이었잖아?

 

와타나베 씨와 같은 공원인데

 

그런데 날짜는
1943년 8월 3일이야

 

이거야...

 

그녀는 이 순간을
선택한 거예요

 

이제 가 버리는 거죠?

 

선택할 거죠?

 

전 알아요

 

그녀와의 추억을
선택하리란 걸

 

도대체 내가 왜 도와줬지?

 

바보같이!

 

여기 처음 왔을 때

 

행복했던 기억을

 

필사적으로 찾았었어

 

그리고 50년이 지난 지금...

 

나도 누군가의 행복의
일부분이었다는 걸 알게 됐어

 

정말 놀라워

 

너한테도...

 

- 언젠가 그럴 때가 올 거야
- 난 선택 안 해요

 

선택해 버리면...

 

여기서의 일을
다 잊어버릴 테니까

 

그래서 안 할 거예요

 

선배와의 모든 걸...

 

내 가슴 속에 묻어둘 거예요
영원히...

 

누군가에게
잊혀진다는 게 무서워요

 

시오리

 

내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건

 

여기에서의 생활과

 

다양한 사람들과
만남과 이별을 통해서야

 

그러니까...

 

여기서의 일을
결코 잊지 않을 거야

 

일요일

 

- 어제 세트장에서?
- 네, 기뻤습니다

 

그 벤치에 혼자 앉아
처음으로

 

22년간의 삶을
돌아볼 수 있었어요

 

잘 알겠습니다
할 수 없지요

 

특별한 예로 인정하지
축하하네

 

여러분들 덕분입니다

 

추리소설 아직 다
못 읽었는데

 

줄테니
내 대신 읽어줄래?

 

세계 대백과사전
다 읽은 후에

 

시오리는 좀 어때?

 

글쎄요...

 

기운을 좀 차려야 할텐데요...

 

잠시 화장실에 좀...

 

이런...뻔한 수법을 쓰다니!

 

일부러 그런 거 아니요
정말이라니까!

 

결국 쇼다 할아버지
그렇게 여자 얘기만 밝히더니

 

선택은 외동딸의 결혼식이라니

 

부모님께 꽃다발
증정하는 장면 말야

 

- 귀엽잖아요
- 뭐가 귀여워?

 

그렇게 귀찮게 하더니만...

 

괜히 쑥스러우니까
더 그러는 것 같아

 

특히 할아버지들은
담당이 여자면

 

야한 얘기 많이 하니까
절대 부끄러워하지마

 

아무렇지도 않을걸요

 

- 좋은 아침!
- 좋은 아침!

 

시오리 청소하자

 

- 안녕하세요!
- 안녕하세요

 

저번 주는 모치즈키를
포함해 22명

 

모두 무사히 보냈습니다
여러분 덕분입니다

 

헌데 안타깝게도

 

카와시마 씨가
담당한 이세야 씨가

 

오늘부터 같이
일하게 될 겁니다

 

당분간 카와시마 씨
조수로 일할 거니까

 

잘 도와주세요

 

그럼 이세야 씨의 인사말을...

 

이세야 씨!

 

이세야 씨?

 

- 어디 갔지?
- 속 좀 썩이겠구만

 

- 카와시마
- 찾아보겠습니다

 

이세야!

 

- 이세야!
- 시오리 청소 시작할까?

 

 

이세야!

 

- 안녕하세요!
- 좋은 아침!

 

- 오오키 마사요시입니다
- 1번입니다

 

- 아라야 사다코입니다
- 아라야 사다코 씨?

 

- '아,라,야...'요
- 네, 들어가세요

 

여기에 앉으세요

 

'사토나가 시오리'

 

미야하라 씨의
35년간의 삶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추억을 선택해 주세요

 

단 오늘이 월요일이니
모레까지 골라주셔야 합니다

 

오늘이 월요일이니
수요일까지 부탁드립니다

 

그럼 여러분들이
선택하신 그 추억을

 

저희가 재현시켜드리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아라타
(모치즈키 역)

 

오다 에리카
(시오리 역)

 

테라지마 스스무
(카와시마 역)

 

나이토 타케토시
(와타나베 역)

 

감독 / 각본 / 편집
코레에다 히로카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