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ttle.Forest.Summer.Autumn.2014

수입 / 배급 : (주)영화사 진진

 

코모리는 토호쿠 지방의
작은 마을입니다

 

상점 같은 건 없어서

 

시장 보려면 면사무소가
있는 시내로 나가

 

농협의 작은 슈퍼나
가게로 갑니다

 

가는 길은 대부분 내리막
길이라 자전거로 30분

 

오는 길은 얼마나
걸릴까요

 

겨울엔 눈 때문에
걸어가야 합니다

 

천천히 걸으면
한시간 반 정도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옆 마을에 있는 큰 슈퍼로
가는 듯합니다

 

제가 거길 가려면
거의 하루가 걸립니다

 

            하시모토 아이

 

            미우라 타카히로

 

            마츠오카 마유

 

            원작 : 이가라시 다이스케
               리틀 포레스트

 

            각본 & 감독
            모리 준이치

 

장마가 갠 사이
고개에 올라 내려보니

 

코모리는
수증기에 잠겨 있었다

 

땅이 머금은 수증기가
힘차게 증발하고 있다

 

코모리는
분지 밑바닥

 

산의 수증기도
흘러 들어간다

 

습도가 점점 높아진다

 

리틀           
                 
 

리틀 포레스트 1     
                 
 

리틀 포레스트 1     
           여름가을
 

             
           여름    
 

 

젖은 셔츠처럼
달라붙는 대기

 

습도 100%에 가까운
공기의 저항감

 

지느러미만 붙이면
헤엄칠 수 있을 것 같다

 

제초해?

 

가만히 두면
병에 걸릴까 봐요

 

비가 내려야 할 텐데

 

논밭의 잡초는
생명력이 강하다

 

어제 파낸 쑥뿌리에서

 

벌써 새싹이 나서
깜짝 놀랐다

 

초록색 침략자

 

밭도, 길도
잡초로 덮여 간다

 

베어내도
뽑아내도...

 

첫 번째 요리

 

며칠을 말려도
빨래가 마르지 않는다

 

잼 만드는 주걱에
곰팡이가...

 

난로를 켜야겠어

 

굴뚝이 달린 난로는
수분이 밖으로 배출돼

 

실내는 건조하다

 

덥지만 곰팡이와
싸우려면 어쩔 수 없다

 

하지만 덥기만 한 것도
짜증나니까

 

상황을 이용해
빵을 굽는다

 

고온고습은
발효에 딱 좋다

 

이 난로는 오븐보다
크기 때문에

 

평소보다 큰 빵을
구울 수 있다

 

코모리에서는
밀 농사를 짓지 않는다

 

수확기와 장마가 겹쳐서
밀이 건조되지 않는다

 

건조가 안 되면
보존할 수 없다

 

그래도 옛날엔
재배했는데

 

쌀 생산을 늘려야 하는
시대에 다 논이 돼 버렸어

 

그래서 빵 만드는
밀가루는 사서 쓴다

 

여기선 한꺼번에
싸게 구입할 수 있어

 

빵, 케이크 모두 이 지방의
통밀가루를 사용한다

 

이스트

 

통밀가루는
아무리 반죽해도

 

빵 밀가루를 썼을 때처럼
얇은 막은 만들기 힘들다

 

그래서 어설프게
반죽하기보단

 

재료를 전부 섞어
장시간 발효

 

가스를 두 번 빼고
천천히 반죽을 숙성시키는 게

 

빵도 잘 만들어지고
편하다

 

모양을 만들고
최종 발효가 끝날 때쯤

 

난로엔 장작을
가득 넣어둔다

 

빵 굽는 온도는
200도 정도라서

 

난로는 꺼지기 직전의
남은 열기로만 한다

 

그래서 겨울엔 빵을 안
굽는다, 추우니까

 

난로로 굽는 건
불안정하지만

 

집중한 만큼 보통 때보다
더 잘 구워진다

 

집안도 뽀송뽀송해졌다

 

산뽕나무 열매 따 와서
간식으로 같이 먹어야지

 

장마 따위에
질까 보냐

 

두 번째 요리

 

잡초밭이 돼 버렸어

 

제초기로 밀면
칼이 회전하면서

 

땅을 갈아엎어
잡초는 떠오르게 된다

 

올라온다

 

하얀 뿌리가
덥수룩하게 올라온다

 

하지만 벼 주변의 잡초는
손으로 직접 뽑아야 한다

 

잡초를 손가락으로
감싸쥐고 뜯어낸다

 

허리랑 어깨 아파

 

아야

 

날씨도 축축한데

 

달라붙기까지 하는
녀석들 때문에 짜증난다

 

난 등에가 싫다

 

뭔가 상쾌한 게
필요해

 

식혜나 만들어 볼까

 

우선 감주를 만든다

 

죽에다 누룩을 섞어서

 

이 계절엔 상온에 방치해도
괜찮다

 

하룻밤이면 된다

 

맛있어

 

여기에 발효를
촉진시키는 균을 넣는다

 

요구르트나 탁주도 좋다

 

난 대부분 빵에 쓰는
이스트를 넣는다

 

잘 섞어서, 따뜻하니까
반나절이면 마실 수 있게

 

발효돼 가스가 부풀면
넘어가는 맛이 일품이다

 

냉장고에 차갑게
넣어둬야지

 

사우나 같은
제초작업 후에...

 

한 잔 더

 

달달하니 맛있어서
남기는 일은 없지만

 

가끔 너무 많이
만들 때가 있다

 

발효가 너무 많이 됐네

 

여보세요

 

응, 나야

 

식혜가 너무
발효됐지 뭐야

 

또 그랬어

 

마시러 올래?

 

걸어 와
키코한테 들킬지 모르니

 

알겠어

 

나중에 봐

 

이 녀석은 2년 후배, 유우타다

 

나갈게

 

나 왔어

 

어서 와

 

비가 올 듯하면서 안 오네

 

어때?

 

우와
엄청 좋은 냄새

 

- 딱 맞게 발효됐네
- 그렇지?

 

앉아서 기다려

 

- 건배
- 건배

 

- 맛있어?
- 맛있어

 

다행이야

 

습도도 높고, 달도
별도 없는 이런 밤은...

 

- 계속 작업한 거야?
- 응

 

끈적하게 감겨드는
진정한 어둠

 

어라

 

물이 너무 빠졌는데

 

물이 샜어

 

그럴 땐 논두렁에 서서
귀를 기울인다

 

물구멍에서 나는
물소리 외에

 

여기 있었네
두더지 구멍

 

두더지, 쥐구멍을
찾아내기 위해

 

논두렁의 잡초도
잘 뽑아야 한다

 

세 번째 요리

 

집 옆에 수유나무가 있다

 

수유가 자라는 계절엔
열매 무게로 가지가 휜다

 

하지만 이걸로 잼을 만들
생각은 한 번도 안 했다

 

난 계속 수유나무를
무시해 왔다

 

설익은 열매는
시고 떫고

 

씨가 커서
먹기 힘들다

 

다른 열매 찾으러 가자

 

떫은 맛이 빠진 열매는
물렁하니 달기만 했다

 

주위엔 맛있는 것들이
많이 있었다

 

그렇게 방치된 열매들은
땅으로 떨어져 썩는다

 

엄마는 청소 좀 하지

 

모처럼 새 신발
신었는데

 

성가시다고 생각했다

 

난 마을로 나가서
잠시 남자랑 살았다

 

열매가 잔뜩 열렸네

 

- 무슨 나무지?
- 수유나무

 

수유?

 

먹을 수 있는 건가?

 

먹을 수 있긴 하지만
떫어

 

- 떫지?
- 아니, 맛있어

 

난 촌사람이라 자신 있는 건
체력뿐이어서

 

그가 닿고 난 안 닿는 게
너무 분했다

 

네 키론 무리야

 

받아

 

내가 딸 거야

 

- 이거 먹으라니까
- 됐어

 

그랑 헤어지고

 

코모리로 돌아와서

 

수유의 계절이
다시 돌아왔다

 

많은 열매가 떨어져
썩어간다

 

그 많은 과정들이
쓸모없게 되었다

 

그런 건 너무 슬프잖아

 

잼으로 만들어 보자

 

씨를 걸러내는 게
꽤 성가셨다

 

문득 그때처럼

 

그에게 먹일 생각으로
만들고 있음을 깨달았다

 

바보같이

 

분리한 즙을 재서

 

우선 중량의 60%
설탕을 넣어 본다

 

달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쓰다

 

100% 넣는 게
나으려나

 

떫은 맛을 걷어내면
수유맛이 안 날까?

 

설탕을 좀 더 넣을까

 

아무 결정도 못 내렸는데
다 졸아 버렸다

 

졸인 상태는 물에 떨어져
묽은 방울이 될 정도

 

묽게 보여도 잼은
식으면 단단해지는 법

 

다 삶아진 잼은 투명감
없는 탁한 핑크색

 

타는 게 무서워 너무
저으면 잼이 탁해진다

 

...고 엄마가 그랬지

 

요리는 마음을 비추는
거울이야

 

집중해

 

다치기도 하니까

 

이것이...

 

지금 내 마음의
색깔인가

 

한 소쿠리의 수유에서
작은 병 3개의 잼이 됐다

 

한 병은 다음 날 아침에
바로 열어 보았다

 

잘 먹겠습니다

 

깊고 신 맛이 도는
잼이었다

 

셔!

 

식도

 

위 안에는
개구리가 살고 있고

 

위, 대장

 

이게 위 속의
개구리 소리야

 

엄마는 약간 놀리려
그랬는지 몰라도

 

사실은 위가 아니라

 

우물 안 개구리란 걸
안 건 최근 일이다

 

- 정말로요?
- 그래

 

속은 거예요?

 

그렇지

 

꽤 충격이었다

 

그리고 이것도
속은 건 아니지만

 

밭에 당근과 샐러리
생강과 허브가 자랄 무렵

 

우리 집에선 매년
우스터 소스를 만들었다

 

네 번째 요리

 

당근, 생강, 고추

 

샐러리 잎은
잘게 썬다

 

냄비에 물

 

국물용 다시마
클로브

 

통후추

 

맛술에 절인 푸른
산초열매, 월계수 잎

 

그리고 세이지, 타임

 

잘게 썬 채소를 넣고
중불에 끓인다

 

국물이 반 정도 줄어들면

 

간장, 식초, 맛술

 

굵은 설탕을 넣고
1시간 정도 끓인다

 

중간에 맛 보고 남은 잼을
넣거나 향신료를 넣는다

 

무명천으로 걸러서
병에 담으면 완성

 

이것이 우리 집의
우스터 소스

 

나에게 우스터 소스란

 

집에서 만드는
간장 베이스의 소스였다

 

- 우스터 소스 줘
- 여기

 

그래서 학생 때

 

- 안녕하세요
- 어서 와

 

가게에 파는 우스터 소스를
보고 깜짝 놀랐다

 

우스터 소스

 

세상에 널리 쓰이고 있는
건 줄은 생각도 못했다

 

처음엔 우리 집에서
시작된 줄 알았다

 

- 그래?
- 응

 

그럼 간장 안 들었어?

 

아마도

 

우리집이 '짝퉁'이란 걸
안 것도 한참 후이다

 

간장 맛 나는 건
다른 소스야

 

내가 발명했다고
한 적 없는데

 

그건 그렇지만

 

게다가 파는 거랑 우리집
거 중에 뭐가 더 맛있어?

 

어릴 때부터의 습관은
버리기 힘들다

 

난 지금도
우물 안 개구리를

 

무심결에 위 안이라고
적어 버린다

 

우스터 소스도
요리할 땐 파는 걸 쓰지만

 

소스로 쓸 땐 우리 집 게
아니면 허전하다

 

잘 먹겠습니다

 

어릴 때 체험은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엄마는
뭐든 기분에 따라

 

거짓말과 진실을 섞어서
하는 사람이었다

 

내가 눈치 못 챈 거짓말이
더 있을지도 모른다

 

의심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다

 

아, 더워

 

내가 뭐든 해 보지 않으면
직성이 안 풀리는 건

 

그 탓인지도 모른다

 

말은 믿을 수 없지만

 

내 몸이 느낀 거라면
믿을 수 있다

 

가을이면 산길 따라 개암
나무 열매를 주우러 간다

 

주워 온 열매를 볶아
부드러워질 때까지 갈아서

 

냄비에 코코아 파우더랑
설탕

 

기름 약간 넣고
윤기가 날 때까지 젓는다

 

'누텔라' 라는 거라고
엄마가 가르쳐줬다

 

발라서(누테) 먹으니까
사투리로 누텔라야

 

엄마 말을
의심할 생각도 못했다

 

어?

 

뭐야?

 

누텔라라는 상표의

 

초코렛, 헤이즐넛 반죽이
세계적으로 팔린단 것도

 

마을 슈퍼에서 알게 됐다
바로 재작년의 일이다

 

엄마, 어떻게
이런 것도 알고 있었지?

 

오히려 감탄하고 말았다

 

너도 먹을래?

 

빵에 가득 발라서 먹는다
내가 좋아하는 음식이다

 

우리 집은 계곡과 숲과
논으로 둘러싸여 있다

 

그 때문에 밤의 방문자가
끊이질 않는다

 

긴꼬리 산누에나방

 

장수풍뎅이

 

반딧불이

 

다섯 번째 요리

 

계곡의 물이 적다

 

차가워

 

가끔씩 강 아래쪽에서
곤들매기가 올라온다

 

민물게도 있고

 

가끔 밭을
횡단해서 간다

 

계곡엔 '멍울풀'이
많이 난다

 

멍울풀은 가을까지
먹을 수 있다

 

껍질을 벗겨 살짝 데친
줄기를 나물로 하거나

 

절임에 넣기도 한다

 

아삭하면서도
끈적거림이 있다

 

빨간 뿌리 부분을
칼로 다져서

 

끈적거리게 만든 것이
멍울풀 토로로

 

된장이나 3배식초로
맛을 내고

 

뜨거운 밥에 얹어서
먹는다

 

더위 먹어 식욕이 없어도
한 그릇 더 먹게 된다

 

참마로 한 것보다
자주 먹는다

 

 

계곡은 짐승들의
통로가 된다

 

뭐지? 뭐지?

 

뭐지? 뭐지? 뭐지?

 

- 곰이잖아
- 맞아

 

나뭇가지에 있는
자두 먹으려고 한 거야

 

안 다쳤나 몰라

 

다쳤을지도 모르겠네

 

우리 집은 계곡과 숲과
논으로 둘러싸여 있다

 

그 때문에...

 

밤의 방문자가
끊이질 않는다

 

여섯 번째 요리

 

양어장 곤들매기를 캠프장
낚시터로 옮기는 일

 

유타도 함께 했다

 

내가 할까?

 

유우타 넌 왜 코모리로
돌아왔어?

 

여길 나가고 싶었잖아
학교는 구실이었고

 

물론 처음엔
그럴 생각이었어

 

그래서 거기서
취직도 한 거고

 

하나 둘...

 

여기 놓자

 

하나 둘...

 

됐어

 

그쪽 사람들은 코모리랑
말하는 게 달라

 

사투리 같은 거 말고

 

자신이 몸으로
직접 체험해서

 

그 과정에서 느끼고
생각하며 배운 것

 

자신이 진짜 말할 수
있는 건 그런 거잖아

 

그런 걸 많이 가진 사람을
존경하고 믿어

 

아무것도 한 게 없는
주제에

 

뭐든 아는 체하고

 

남이 만든 걸 옮기기만 하는
놈일수록 잘난 척해

 

천박한 인간이 하는
멍청한 말 듣는 데 질렸어

 

하나 둘...

 

- 끝났어
- 수고했어

 

곤들매기 먹고 가

 

- 네
- 감사합니다

 

가자

 

난 말야

 

남이 자길 죽이는 걸
알면서도 내버려두는

 

그런 인생을
살고 싶진 않았어

 

잘 먹겠습니다

 

다 됐어

 

와서 먹어

 

- 감사합니다
- 잘 먹겠습니다

 

정말 맛있겠어요

 

어때?

 

맛있어요

 

소금구이도 맛있지만
된장국도 맛있어요

 

그렇지? 끊는 물에
된장만 풀었는데

 

먹을 만하지?

 

여기를 나가서 처음으로

 

코모리 사람들을
우리 부모님도 그렇고

 

존경하게 되었어

 

참말을 할 수 있는
삶을 사셨구나 하고

 

- 고마워
- 또 봐

 

유우타는 자기 인생과 마주하려고
돌아온 것 같다

 

난 도망쳐 왔다

 

일곱 번째 요리

 

토마토는 강하다

 

이렇게 버린 씨에서도
내년엔 싹이 나온다

 

그냥 두면 가지가 자라나
정글처럼 돼 버리니

 

옆에 난 가지는
잘라 정리해 준다

 

자른 가지를 땅에 꽂고
밟으면 바로 뿌리 내린다

 

정말 강하네

 

또 한편으론
토마토는 매우 약하다

 

장마가 길어지면 줄기 끝의
색이 변하고 쪼그라들어

 

성장이 멈추고
그대로 시들어 버린다

 

시들어 버렸네

 

비가 많이 오는
코모리에선

 

그래서 다들 비닐하우스에서
토마토를 재배한다

 

여름의 더운 날
차가운 토마토

 

살 것 같애

 

요리에도 빠질 수 없다

 

완전히 익은 토마토를 수확해

 

데친 다음 껍질을 벗기고
푹 삶는다

 

국물채로 병에 담고
병째로 소독해서 보존

 

우리 집 홀 토마토

 

겨울엔 카레나
스파게티에 넣는다

 

잘 식혀서 그대로 먹어도
맛있다

 

작은 토마토를
한 입에 쏙

 

토마토 없는 생활은
생각할 수도 없다

 

그런데...

 

나의 토마토는
노지 재배

 

비가 적게 내리는 해는
괜찮지만

 

대개는 병에 걸려

 

수확은 극히 소량일 뿐

 

소독하면 돼

 

안 쓰는 하우스
싸게 달라고 해

 

혼자 쓸 건
안 비싸니 사면 돼

 

그게 안 번거롭고 좋아

 

그런 건 왠지
억울해서

 

노지에서 맛있게 재배
하는 법을 알고 싶어요

 

코모리 사람들에겐
그렇게 말한다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하우스를 짓게 되면
코모리에 정착하게 될까

 

그게 기정사실이 될 것
같아

 

계속 미루고 있는 거다

 

어느 샌가
가을 하늘이 됐네

 

            FLOWER FLOWER -사계 中...
            유이(YUI)의 夏 (여름)

 

            변화에 맡겨 살 수 있으면

 

            거기에 있을 곳이 있다면

 

            떠나가라, 떠나가라

 

            떠나가라, 떠나가라

 

            도망치는 것 같아 두렵지만

 

            내가 볼 수 없기 때문에

            모든 걸 지울 수 없어

 

            되돌릴 수 없어

            믿고 싶었던 것 뿐이야

 

            나른한 하늘을

            날아가 보는 거야

            그걸 가르쳐준

            그 곳으로 돌아가자

 

            외로워 보이는

 

            작은 꽃이 피어있어

 

            강하게 뿌리를 뻗지

 

            보이는게 전부가 아니야

 

            나른한 하늘을

            날아갈 수 있다면

 

            이런 고민들도

            금방 잊을까?

 

            나른한 하늘을

            날아가 보는거야

            그걸 가르쳐준

            그 곳으로 돌아가자

 

수입, 배급
(주)영화사 진진

 

코모리는 토호쿠 지방의
작은 마을입니다

 

상점 같은 건 없어서

 

시장 보려면 면사무소가
있는 시내로 나가

 

농협의 작은 슈퍼나
가게로 갑니다

 

가는 길은 대부분 내리막
길이라 자전거로 30분

 

오는 길은 얼마나
걸릴까요

 

겨울엔 눈 때문에
걸어가야 합니다

 

천천히 걸으면
한시간 반 정도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옆 마을에 있는 큰 슈퍼로
가는 듯합니다

 

제가 거길 가려면
거의 하루가 걸립니다

 

            하시모토 아이

 

            미우라 타카히로

 

            마츠오카 마유

 

            원작 : 이가라시 다이스케
               리틀 포레스트

 

            각본 & 감독
            모리 준이치

 

리틀           
                 
 

리틀 포레스트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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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름가을
 

             
               가을
 

 

우편물입니다

 

 

안녕하세요

 

이건 전기
이건 수도

 

감사합니다

 

엄마한테 가끔 연락 와?

 

아뇨, 전혀요

 

그렇구나, 뭐 도울 일
있으면 언제든 말하렴

 

감사합니다

 

엄마는 5년 전

 

나 혼자 남겨두고
갑자기 집을 나갔다

 

첫 번째 요리

 

논으로 가는 길에 무심코
으름을 찾기 시작한 건

 

저기 있네

 

아직 녹색이야

 

벼 베기 준비를
시작할 때다

 

논에 물을 끊고 벼포기
사이에 도랑을 파서

 

물이 흐르기 쉽게 만든다

 

잘 말려두지 않으면

 

벼베기할 때 질퍽해서
작업하기 힘들어진다

 

서둘러 하는 게
중요하다

 

벼는 점점 노랗게
익어가고

 

양분을 흡수해
단맛이 증가한다

 

단단하고 초록색이었던
으름도

 

통통해지고
보라색이 된다

 

쩍 하고 입을 벌린다

 

으름은 나무에 휘감긴
높은 덩굴에 열매를 맺어

 

아이들은 나무에 올라
무서워하며 따 간다

 

괜찮아?

 

많이 있어

 

무서워 보여

 

안 무서워

 

저기도 있어

 

하지만 어른이 돼 보니

 

미끄러지겠어

 

무서워 무서워

 

괜찮아 괜찮아

 

위험해 위험해

 

조금만 더

 

괜찮아

 

- 조심해 조심
- 키코

 

할아버지

 

해 지려고 하니
조심해라

 

나도 갈 거야

 

으름 따셨구나

 

할머니한테
갖다 주려는 거야

 

사이 좋으신가 봐

 

위험해 위험해

 

괜찮아

 

위험해
정말 위험하다니까

 

따 왔어

 

많이도 따 왔네

 

씨는 되도록
집 주위에 뿌려

 

늘리도록 노력한다

 

냉장고에 넣어둔 것도
아닌데 시원하지

 

고상한 단맛이야

 

일본과자가 지향하는
맛이 이런 걸 거야

 

- 맞아
- 응

 

껍질의 쓴 맛을 살리기
위해선 뭘 넣어야 할까

 

- 껍질 먹고 싶어?
- 응

 

단맛? 신맛?
매운 맛?

 

전부 다?

 

으름의 껍질을
한입 크기로 잘라서

 

쿠민

 

마늘, 양파

 

카레 가루, 토마토
거기다 으름을 넣고

 

간장이랑 잘 볶아서

 

인도풍 요리

 

안주로도 좋고
반찬으로도 좋다

 

된장으로 간을 해서
고기 넣어 튀긴 것은

 

많이 만들어
벼 베기 때 도시락으로

 

사람이나 동물 모두
으름 열매가 인기라

 

금방 없어질 듯하지만

 

가끔 단풍 든 산 속에서

 

시들어빠진 으름을
만날 때가 있다

 

두 번째 요리

 

우리 집 벼는
두 번 하늘을 난다

 

한 번은 모내기할 때

 

모종 다발을 일정
간격으로 던져 놓으면

 

일일이 모종을
가지러 가는 수고를 던다

 

두 번째는
벼 베기 할 때

 

베어낸 벼를
다발로 묶어

 

짚으로 묶어서

 

기둥 근처에
정리해 둔다

 

벼 베기 할 땐 항상
점심은 호두밥

 

그 덕분에 햇호두도 맛본다

 

강변에 떨어져 있는
호두를 주울 땐

 

동물들과 경쟁을 한다

 

주운 호두를
정원 구석에 묻는다

 

표피가 까맣게 썩으면
깨끗하게 씻는다

 

말려서 망에 넣어두면
몇 년이나 저장할 수 있다

 

코모리의 호두는 껍질이
두껍고 단단하기 때문에

 

깨는 데 힘이 든다

 

프라이팬에 익혀
타올 두르고 망치로 깬다

 

껍질 파편은
깨끗하게 치운다

 

남아 있으면
이가 상한다

 

절구로 잘 빻아
반죽 상태로 만든다

 

씻어놓은 쌀에 섞는다

 

술과 간장으로 맛을 내
밥을 짓는다

 

쌀 10에 호두 2나 3

 

간장 1 작은술
술은 약간

 

향도 진하고 감칠맛도
나고 맛있는 밥이 된다

 

잘 먹겠습니다

 

이 밥은
작년 쌀이다

 

정확히 1년 전에
이런 식으로

 

작년 쌀로 지은 호두밥을
먹으며 수확한 쌀

 

볏단을 어긋나게
쌓아올려 말린다

 

이치코

 

키코 할머니다

 

포도랑

 

멜론

 

고마워요

 

많이 수확했네

 

제 몫은 그럭저럭
준비한 것 같아요

 

신세진 마을분께
보내면 기뻐하겠네

 

그런 사람 없어요

 

그래?

 

내가 없을 때도

 

매년 모내기하고
벼베기하고

 

호두 줍고 그랬어요?

 

그랬지

 

이치코가 태어나기
전부터 쭉...

 

매년 매년 계속 해 왔지

 

그럼 갈게

 

잘 가세요
고마워요

 

그래

 

그럼 해 볼까

 

세 번째 요리

 

캠프장 낚시터에서

 

시즌 개장 전, 천 엔으로
곤들매기 무제한 낚시

 

생선 자반을 만들어
보기로 했다

 

우선은 잡아서

 

내장을 제거하고 씻는다

 

육수

 

식초

 

설탕

 

간장

 

고추를 끓여
양념장을 만든다

 

밀가루를 묻힌다

 

튀긴다

 

양념장에 재운다

 

한 두 시간이면 먹을 수
있지만 다음 날도 맛있다

 

나무가 물들어 갈 때

 

네 번째 요리

 

밤조림이 유행했다

 

부족해
더 넣어야겠어

 

시작한 사람은
캠프장의 시게히코 씨와

 

거기에 빈번히 가는
유우타

 

한가한 날에
만들어 봤더니

 

뭐 하고 있어?

 

어서 와

 

우연히 들른 사람들이

 

이거 맛있는데

 

그렇지?

 

우리 집에서도
만들어 볼까?

 

뭘로 만들었어?

 

설탕만 들었어

 

나도 만들겠구만

 

맛있어 맛있어

 

그렇게 시작된 모양이다

 

껍질 까서 설탕 많이 넣고
푹 끓여서

 

거기에 간장
살짝 넣고 만들었는데

 

한 번 먹어봐

 

- 한 번 먹어볼까
- 부탁해

 

단 맛은 딱 좋네

 

- 잘 먹겠습니다
- 드세요

 

너무 부드러워

 

전혀 안 떫죠

 

맛있어요

 

어이
잠시 쉬다 해

 

나의 새로운 밤조림
맛 좀 봐

 

잠시 쉬어

 

이번엔 레드와인을
넣어봤어

 

떫은 맛은?

 

베이킹 소다로

 

냄새가 나지?

 

키코도 있었구나

 

전기톱 소리가 나길래
간식 갖고 왔어

 

오늘 남편이 산에 갔거든

 

잘 오셨어요
물 끓이고 있어요

 

그건...

 

우린 브랜디를
넣어 봤거든

 

- 어차피 안 마셔
- 과연

 

이쪽으로 앉으세요

 

고마워
그럼 잠시 실례할까

 

전 레드와인을 넣었거든요
색깔이 다르죠

 

작업 열심히 해

 

고마워

 

발명하면 또 와

 

다음엔 뭘 넣어 볼까

 

- 가 볼게
- 또 봐요

 

잘가

 

다음엔 뭘 넣으면
좋을까요?

 

간장 얘기도 나오던데

 

넣으면 짜지 않을까요?

 

수고 많았어

 

밤 주울 땐
곰을 조심해야 한다

 

장화와 집게로
껍질 속의 밤을 꺼낸다

 

딱딱해지기 전에 빨리
외피를 벗긴다

 

오래된 밤은 살짝 삶으면
벗기기 쉽다

 

재나 베이킹 소다를
넣은 물에 하룻밤 재운다

 

다음 날 그대로 불에 올려
약불에 30분 끓인다

 

국물은 떫고
새까맣다

 

물을 갈아
30분 끓인다

 

또 물을 갈아 30분

 

이걸 반복하면 국물이
투명한 와인색이 된다

 

이 정도면 된 것 같은데

 

중간에 심과 털을
깨끗하게 정리

 

삶아진 밤 무게의 60%
설탕을 넣고 조린다

 

불을 끄기 직전에

 

술로 향을 가미해도
맛있다

 

보존할 경우엔
국물채로 병에 넣는다

 

국물 있는 채로
2, 3개월 두면

 

설탕이 잘 스며들어
끈적해진다

 

난 이렇게 먹는 게 좋다

 

밤조림은 마치
밤과자 같은 식감이다

 

밤나무는
쪼개기 쉽고

 

고온에서 타는
좋은 장작이 된다

 

장작 난로

 

따뜻한 차에 곁들여 먹는
밤조림

 

밤이 추위를
초대한다

 

다섯 번째 요리

 

오늘은 이웃 아줌마들이
모여 수다 꽃이 피었다

 

힘들었겠네

 

남편은 뭐 하고?

 

우리 남편은 입만 살아서
말만 하고

 

감자 정도는
스스로 옮기라잖아

 

남편 교육을
덜 시킨 거 아냐?

 

애정이 부족한 거야

 

우리 집은 애정이 넘치니
여보, 부탁해 말만 하면

 

알았어 하고
옮겨 주는데

 

말린 고구마 구웠어요

 

- 맛있겠다
- 뜨거워

 

향기가 참 좋구나

 

올해 고구마 어땠어?

 

자잘한 것뿐이에요

 

딱딱한 땅에 심어서
그런 걸까요?

 

올해는 6월에 모종을
사 와 심었는데

 

모종에서 뿌리가 나면

 

덩굴만 자라고 고구마가
못 자란다고 해서

 

임시로 심어 새로 난 걸
잘라 심어 봤다

 

뿌리가 나온 모종을 심는게
좋단 사람도 있어요

 

작년에 그래서
잘 자랐는데

 

비료가 모자랐던 건가?

 

고구마는 비료 없어도 돼

 

코모리 땅이
고구마랑 안 맞아

 

춥기도 하고

 

고구마 키워도 잘 안 되니
결국은 사서 먹어

 

토란은 어떻게 됐어?

 

우리 집은 별로였어

 

비가 너무 적게 왔어

 

토란은 어쨌든 수분이
많아야 한다

 

비료도 듬뿍 줘야 하고

 

작년에 수확한 것을
심었는데

 

보존상태가 나빠 약간
썩었지만 괜찮다

 

서리 걱정이 없어지면
빨리 심는 게 좋다

 

싹이 날 때까지
시간이 걸리니까

 

줄기에서 우산처럼 말린
잎이 자라면서 펴진다

 

포기가 자라면
작은 싹이 많이 나온다

 

이건 계속
잘라줘야 한다

 

안 그러면 토란이
크게 자라지 못한다

 

고구마나 토란이나
추위에 약하기 때문에

 

서리가 내리기 전에
수확 안 하면 전멸한다

 

고구마는 추우면
보존하기도 힘들어져

 

캐내면 바로
말려 버린다

 

냄비에 물을 끓여

 

소쿠리를 얹어
차례차례로 쪄낸다

 

껍질을 벗기고
길게 잘라

 

짚으로 묶어
말려 둔다

 

말리면 단맛이 증가해서
살짝 구워도 맛있고

 

보존하기도 편해
겨울 내내 즐겁다

 

압력밥솥에
부드러워질 때까지 쪄서

 

우유나 두유 넣고
으깨주면 돼

 

조미?
난 육수로 해

 

그렇게 먹으면 몸도
따뜻해지고 맛있어

 

토란은 캐내면
흙이 묻은 채로

 

신문지나 짚으로
꼼꼼하게 싸서 보존

 

먹을 땐 포기에 붙은
새끼 토란을 떼고 쓴다

 

토란은 추우면
금방 썩어 버리고

 

건조하면
바싹 말라 버리기 때문에

 

집에서 가장 따뜻한
곳에 둔다

 

우리 집은
난로 굴뚝 근처

 

저번에 허둥대는 바람에

 

토란 껍질 벗기자마자
삶았더니

 

거품이 냄비 위로 넘쳐서
엉망이 돼 버렸어요

 

그러면 안되지

 

토란은 한 번 삶은 물은
버려야 해

 

아는데 끓이고 나서야
매번 생각나요

 

우리 집도

 

남편이 '또 그랬어?'하고
역정을 내

 

역시 애정이 없는 거야

 

또 시작이네

 

우리 집은 괜찮냐고 하며
얼마나 걱정해 주는데

 

사랑이 넘쳐서 좋겠네요

 

그럼 그럼

 

추위가 심해지면

 

혼자 사는 나는
나가기 힘들어진다

 

- 좋아하는 사람 만들어
- 맞아

 

한파가 하루만 와도

 

집에 둔 채소가
추위에 못 쓰게 돼 버린다

 

- 잘 먹었어
- 또 오세요

 

장작이 이 정도라면
안심이야

 

그래도 절약하게 돼요

 

아무리 있어도
걱정은 될 거야

 

잘 있어
잘 자고

 

안녕히 주무세요

 

맛있게 생겼네

 

발밑 잘 보고 걸어

 

어디로 간 거지?

 

고구마라도 구울까

 

여섯 번째 요리

 

집 청둥오리 새끼는
귀엽다

 

머리에 색깔 포인트가
있는 게 귀엽다

 

코모리에서 태어난 오린
길들여져서 안을 수 있다

 

깃털이 폭신폭신하다

 

따뜻해

 

6월

 

벼가 집 청둥오리보다
커지면 논에 내놓는다

 

나기 시작한 잡초도 먹고
벼에 붙은 벌레도 먹고

 

헤엄치면서 벼 뿌리에
산소도 보내고

 

물이 탁해져
햇볕을 차단해

 

잡초가 자라지 못하게
한다

 

변이 비료도 되는
오리 농법

 

줄서서 논두렁을 지나는
집 청둥오리

 

너무 귀여워

 

그래서...

 

키우는 사람은 죽이거나
먹고 싶어 하지 않는다

 

알고는 있는데

 

알고는 있지만...

 

내가 식탐이
많아 보이는지

 

이상하게 오리를 죽일
때면 꼭 나를 부른다

 

물을 끓여둔다

 

칼을 간다

 

끓는 물에 넣는다

 

이렇게 하면 껍질이
불어서 잘 뽑아진다

 

깃털을 뽑는 게
중요하다

 

깃털 심이 남아 있으면
먹을 때 불쾌하다

 

그러니까 정성껏 한다

 

잔털은 태운다

 

뼈를 따라 칼집을
넣어 가르고

 

내장을 제거한다

 

가슴살

 

수고 많았어

 

감사합니다

 

칼로 껍질에 칼집을 넣어
소금을 뿌려둔다

 

달궈진 두꺼운
프라이팬에

 

기름 없이 껍질을 밑으로
약불에 천천히 굽는다

 

어쨌든 기름이
많기 때문에

 

숯불에 기름을 빼며
굽는 게 좋지만

 

집에서 굽는다면
계속 기름이 나오니까

 

그걸 오리에 뿌려주면서
굽는다

 

천천히 껍질이
노릇노릇해질 때까지

 

그리고 뒤집어서
기호에 맞게 굽는다

 

집 청둥오리의
농후한 고기 맛

 

뼈는 약한 불로 푹 고아
육수를 낸다

 

간이나 염통은
매콤하게 볶는다

 

맛술, 간장, 생강
고추를 넣고

 

모래주머니는
회로 뜬다

 

간장 생강 소스로
깔끔하게 먹는다

 

처음으로 오리를
죽였을 때

 

한 마리를 주머니에 담아
잠시 걸었다

 

그때 생각보다 약간
무거웠던 게 기억났다

 

잘 먹겠습니다

 

맛있어

 

서리가 내린 날

 

일곱 번째 요리

 

코모리 여기저기서
흰 연기가 올라오고 있다

 

표고버섯 하우스의
난방

 

화덕의 연기

 

왕겨숯을 만드는 연기

 

훈탄기에 불을 지펴
왕겨를 산처럼 쌓는다

 

훈탄은 왕겨를 태운
숯이다

 

이걸 논이나 밭에 뿌리면
토질이 좋아지고

 

파종할 때도
소중히 쓰인다

 

예를 들어 당근 씨를
뿌릴 때 가볍게 땅을 갈아

 

왕겨숯으로 덮어준다

 

비가 많이 올 때 땅이
굳어지는 것을 방지하고

 

마르지 않게
습도를 유지해준다

 

당근은 미나리과 식물로
습도 높은 걸 좋아한다

 

당근은 새싹이 중요해

 

고르게 밀집해서
자라도록 해야 해

 

싹이 나면
솎아내야 한다

 

포기와 포기 사이는
비워두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엄마는...

 

솎아내는 건
늦게 해도 돼

 

당근은 경쟁하며
자라야지

 

안 그럼 잘 못 자라

 

당근은 미나리과니까

 

그 얘기
백만 번 들었어

 

다녀왔어요

 

때마침 잘 왔네
시금치랑 당근 뽑아 와

 

신발 벗지 말고

 

스튜 만들 거니
수놈으로 뽑아 와

 

수놈?

 

당근의 수그루는
억세고 단단해서

 

보통 얘부터 솎아낸다

 

하지만 엄마는 방치한다

 

향이 진하니까
서양요리에 잘 맞아

 

맞는 말처럼 들리지만

 

잡초투성이인
당근 밭을 보면

 

솎아내는 걸 잊은 데 대한
변명이란 걸 알게 된다

 

풀이 엉켜서
하나 뽑는 것도 힘이 든다

 

정말 덜렁댄다니까

 

덜렁대는 게 아냐
잡초랑 경쟁한다니까

 

잡초농법이라고 있어

 

거짓말도 잘해
덜렁이

 

그렇지만 스튜와
시금치 소테는 맛있었다

 

내가 스스로 만들 수
있을 때까지

 

엄마의 채소볶음 방법은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1년 내내 밭엔 여러
종류의 푸성귀가 있다

 

생으로 먹어도
아삭한 순무

 

겨울에 장미 모양이 되는
타차이

 

한여름에도 만들 수 있는
청바우새

 

벌레도 좋아하는
소송채 등등

 

그때 그때 열린
푸성귀를 뜯어서

 

씻고

 

썰고

 

볶고

 

간하고

 

순서는 같은데

 

엄마 거랑
씹는 맛이 다르다

 

뜯는 시기를 놓쳐
너무 자란 푸성귀라도

 

엄마가 볶으면 맛있었다

 

내가 만들면
뭔가 모자란 맛이다

 

살짝 데치진 않았을 텐데

 

마늘을 넣든 안 넣든

 

파를 넣든 안 넣든

 

간장 간을 하든

 

소금 간을 하든

 

고기를 넣든

 

맛은 괜찮은데

 

좀 질긴데

 

어느 날 샐러리 껍질을
벗기다 문득 생각했다

 

푸성귀 껍질도
벗겨보면?

 

벗겨진다 벗겨져

 

바로 이거였다

 

또 볶은 거뿐이야?

 

좀 정성 들인 요리 좀
먹어보자

 

잘 먹겠습니다

 

정성이 들어간
음식이었어

 

덜렁대고 대충하는 건
나였다

 

아침 식사용으로
시금치 뜯어 가야지

 

서리 맞은 시금치는
단 맛이 더해져 맛있다

 

- 안녕하세요
- 안녕하세요

 

- 전표 넣어 둘게요
- 감사합니다

 

한달에 한 번 전력회사와
가스회사에서

 

계량기 확인을 위해 온다

 

- 안녕
- 안녕하세요

 

우편배달부도
가끔 온다

 

우편물입니다

 

 

안녕하세요

 

- 춥지?
- 추워요

 

오늘은 낮부터
눈이 온대

 

청구서뿐이에요?

 

편지도 한 통 있어

 

그럼 잘 있어

 

엄마로부터
편지가 왔다

 

FLOWER FLOWER -사계 中...
유이(YUI)의 秋 (가을)

어두운 숲 속, 물방울 소리            

 

귀 기울이면 들려 와요            

 

산들바람이 세차게 불어            

 

상처를 치유해요            

 

그땐 몰랐던 것들이            

잔뜩 있었지만            

지금은 알아요            

알려주고 싶어요            

 

계속 기다리고 있었어요            

 

계속 믿으며            

 

그 날로 돌아갈 수 있다면            

 

계속 기다릴 수 없어            

 

기억이 흐려 가요            

 

깨닫지 못했던 것들이            

 

나 자신을 비난하게 해요            

 

부드럽게            

노래를 흥얼거리면            

 

이것 봐, 보일거야            

자 봐, 보이기 시작해요            

 

살며시 내일을            

 

살며시 비추어            

 

붙잡아 두고            

싶은 것들 뿐            

 

계속 잊지 않을 거야            

 

당신이 남겨 준 것들            

 

이렇게 따뜻하게            

 

내 마음속에 스며드네